[한경에세이] 엄마의 사랑
경칩이 지나고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바람이 차다. 이럴 때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지난 주말 지인의 초대로 아이를 데리고 그 집에 다녀왔다. 정원이 있는 집이었는데 모래장난 하는 게 좋았던지 아무리 집안으로 들어가자 해도 아이가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햇볕이 강하긴 했지만 그만큼 쌀쌀한 바람도 불어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콧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닦아 달라고만 하고 계속 모래성을 쌓는 데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행복해 보여 걱정을 잠시 뒤로 미뤘다.

그렇게 한나절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와서 씻기고 재우는데 잠자기 전 이 녀석이 갑자기 기침을 하는 게 아닌가. 지난해 폐렴을 앓고 난 뒤로는 기침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엄마 욕심에 따듯한 이불을 덮어줬는데 이 녀석은 그게 답답했는지 계속 걷어차면서 잠을 잔다.

참 신기하다. 나도 잠이 들면 나름 깊이 자는 편인데 아이가 이불을 걷어찰 때마다 눈이 떠지는 것이다. 나를 차는 것도 아니고 이불을 걷어차는 건데도 귀신같이 눈이 떠진다. 밤새 7~8번 정도 눈이 떠진 것 같다. 도대체 이게 어디에서 오는 무슨 힘일까? 걱정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얕은 잠일 수도 있고, 잠결에 추워서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 이상의 어떤 에너지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닐 때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도 학교 앞 정류장에 거의 도착할 때쯤엔 기가 막히게 눈이 떠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도 분명 차이가 있다.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고 서툴러서 어떻게 잘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건 부모와 자식 간의 어떤 초능력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예민한 사람이 옆에 누가 부스럭거려서 잠을 자지 못하는 그런 느낌과는 다르다. 게다가 나는 예민한 성격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피로함이 몰려오긴 했지만 그 와중에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늘 부모님이 날 방목해서 키우셨다고 생각했다. 그냥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서 자랐다고…. 하지만 지금 와서 문득문득 되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식 때문에 잠 못 이루셨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식을 위해 기도하셨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식 때문에 아파하셨을까….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네 살 배기 아이 하나 키우는 엄마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내 부모한테 무엇을 받았을까를 따지는 건 어리석은 생각인 듯싶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 어떤 부모도 충분히 우리를 사랑하셨을 거다. 그럼 이젠 우리가 사랑하는 일만 남은 것이 아닐까?

박경림 < 방송인 twitter.com/Talkin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