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 지는데 전직 임원에게 수억원의 예산을 물쓰 듯 쓰는 금융투자사나 유관 기관들의 관행에 곱지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고액 연봉은 기본이고 '전망 좋은' 최고층 임원실과 개인 비서, 기사와 차량 지원까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이 업계 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전관예우'라는 지적과 함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前 회장 '특급대우' 도마위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등 161개 회원사들의 회비로 운용되고 있는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월 퇴임한 황건호 전(前) 협회장에 대한 '특급 전관예우'로 눈총을 사고 있다.

협회 고문인 황 전 회장은 현재 금투협이 새로 지은 금융투자교육원빌딩(지상 15층, 지하2층) 내 최고층인 15층 임원실을 단독으로 사용 중이며, 개인비서 1명을 제공받고 있다. 또 1년 간 개인 기사와 의전차량은 물론 매달 고문료로 500만원씩을 협회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맞은편 한 복판에 들어선 이 건물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3.3㎡당 월 임대료가 약 8만원 내외인 것으로 확인됐다. 1개층의 전용면적이 330㎡(약 100평·13~15층 제외)인 만큼 황 전 회장은 연간 억대의 개인사무실을 공짜로 사용 중인 셈이다.

이 빌딩에는 전국투자자교육협회의를 비롯해 기획, 이러닝교육팀 등 실제 업무부서인 금융투자교육부서가 3개층(11~12층)을 사용 중이고, 4개층(5~9층)이 강의실 및 세미나실로 운용되고 있다. 4층에는 금융투자교육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2~3층은 어린이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황 전 회장은 아직까지 협회장 시절 겸직이던 국제증권업협회협의회(ICSA), 국제투자자교육연맹(IFIE), 아시아투자자교육연맹(AFIE) 등 3곳의 해외직 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 연맹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회장직은 유지된다. 다만 ICSA와 IFIE 회장직 모두 법인장 자격으로 맡았던 것이다.

한편 황 전 회장은 최근 KB금융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된데 이어 서울대 경영학과 초빙교수로도 부임했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4년부터 8년간 금투협 회장으로 일했다.

"업계 공헌 감안 시 적절한 예우" vs "이해할 수 없는 지나친 수준"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황 전 회장에 대한 의전 사항은 모두 박종수 신임 회장의 인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또 옛 증권업협회 시절에도 전 회장에 대한 기사 및 차량 지원과 매월 300만 정도의 고문료가 지급된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직까지 황 전 회장이 ICSA 등 해외직 회장으로 직접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비서와 사무실 제공 등은 과도한 의전 지원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또 15층 임원실은 교육원 회장실과 부회장실이 함께 있고, 실제 전용면적도 100평에 못 미친다"라고 말했다.

실제 회원사들의 입장은 어떨까. '지나친 특급 대우'라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투자사 대표는 "협회장에서 물러난 경영진이 1개층 전부를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과도한 예우로 볼 수밖에 없다"며 "또 아시아투자자교육연맹 등 회장직을 아직 유지하고 있지만, 활동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연봉 6000만원도 물론 지나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특히 회원사들의 협회비로 지급되는 특급 대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황 전 회장은 곧 KB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선임될 예정인데 그간 협회가 황 전 회장을 위해 임시 거처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최고경영자가 건강 상 이유 또는 피치못할 개인 사정으로 임기 전 퇴사한 경우엔 적절한 예우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황 전 회장의 경우 무려 8년 간 협회장으로 오랜 기간 근무했기 때문에 지나친 특급 예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선 공공연한 비밀…'官' 출신이면 더 유리할수도

금투협의 경우 협회비가 일종의 준조세 형식으로 분담되고 있어 전 경영진에 대한 지원이 전면으로 떠올랐지만, 사실 금융투자업계에선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전관예우'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대부분 금융투자사는 적어도 1년간 전 임원에 개별 계약에 따라 고문료를 지급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의 경우엔 '비밀 계약'이라서 연간 고문료 규모조차 공개할 수 없다고 꺼려했다.

최근 전 경영진과 고문직 계약을 끝낸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황 전 회장이 받고 있는 연봉 6000만원 수준의 고문료는 현직 시 받은 연봉에 비해 10% 수준에 불과한데 오히려 적은 돈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대략 1년 정도 전 경영진에 대한 예우로 여러가지 지원을 해 주는 것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내부 규정에 따라 전 경영진에 대한 예우를 한 것이기 때문에 여지껏 금융투자업계 안에서 '과잉 예우' 논란이 발생한 일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은퇴한 전 임원이 '관(官)' 또는 '민(民)' 출신인지 경력 여부에 따라 전관예우가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증권유관기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수장이 '관' 출신이면 당시 정계와 유대관계가 밀접하거나 금융정책 및 집행기관 내 인맥이 넓어 퇴사 이후에도 1년 이상 초호화 예우를 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민' 출신의 수장들은 대체로 스스로 고문직을 고사하거나 지나친 의전을 사양하는 사례가 많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한민수/ 김효진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