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알고 있다. 선거 결과가 어떨지. 그리고 새로운 차르가 힘을 잃었다는 것을.”(독일 슈피겔)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4일 치러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당선은 투표 전부터 기정사실화됐다. 관심은 집권 3기를 맞이하는 푸틴이 범국민적인 ‘반(反)푸틴 정서’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쏠리고 있다. 푸틴이 부정선거 의혹과 각종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을 카드에 따라 향후 러시아의 운명이 엇갈릴 전망이다.

◆선거 직후부터 부정선거 규탄 시위

중산층이 등 돌린 '푸틴의 복귀'…모스크바 대규모 시위 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러시아 대선에 대해 “푸틴의 당선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광범위하게 부정이 저질러졌느냐가 관심거리”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러시아 총선에서 “1200만표가 조작됐다”는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면서 푸틴이 정치적 위기에 몰렸고, 이번 대선에서도 각종 부정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모스크바 공무원 20만명 중 4분의 1이 푸틴 측으로부터 9000루블(36만원)을 받고 한 사람당 다섯 번 투표키로 했다”고 폭로했다.

선거감시단체인 골로스의 안드레이 부즈닌 대표는 “시골 투표소에서 1차 검표할 때와 중앙에서 집계할 때 각각 조작이 자행된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5일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기로 했다.

실제 부정선거가 자행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푸틴 측은 러시아 전역 9만1000개 투표소에 웹카메라를 설치해 투표를 감시했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에서 685명의 감시단도 파견했다.

그러나 부정선거에 대한 비난이 나오는 것은 푸틴의 대통령직 복귀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러시아 내의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푸틴이 대통령에 복귀하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총리에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을 들러리로 세우고 푸틴이 측근을 동원해 권력을 향유하는 현상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

◆미다스의 손 푸틴

푸틴이 총리직을 거쳐 변칙적인 방법으로 다시 권좌에 오른 데 대해 러시아 민심은 크게 이반한 상태다. 모스크바 경찰의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80%가 반푸틴 시위에 동조했다. 푸틴 체제에 대한 반감이 똑똑히 확인된 만큼 이를 달래는 데 당분간 정책의 주안점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푸틴이 대대적인 부패 척결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선거 의혹을 덮어야 하는 데다 그간 정부 주도형 성장 과정에서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을 만큼 관료 부패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러시아는 청렴도지수에서 아프리카 수준인 전 세계 143위로 평가됐다(국제투명성기구). 푸틴의 지역 기반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들이 정치·경제 요직을 독식한 것에 대한 불만도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전직 유도 코치였던 아르카디 로텐베르크는 유도를 통해 푸틴과 관계를 맺은 뒤 가즈프롬에 석유관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자산 수십억달러의 거부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러시아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것도 푸틴 정권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문제다. 2000년 푸틴이 집권할 당시 브렌트유는 배럴당 19.80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배럴당 120달러를 넘을 정도로 유가가 급등하자 ‘오일머니’를 발판으로 러시아는 연평균 7%대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향후 글로벌 경기 둔화로 유가가 하락할 경우 푸틴의 주요 지지기반인 신흥 중산층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푸틴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도 경제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