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가산점은 못 줄 망정…'군바리' 소리 들으며 전선 지키겠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미얀마를 탈환한 영국의 윌리엄 슬림 장군은 “군은 사기를 먹고 싸운다. 사기는 곧 무형의 전투력”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의 전쟁영웅인 보구앤지압 장군도 전쟁 승리의 요체를 전쟁 의지 관리에 두었다. 장병의 사기를 높여야만 싸울 의욕이 생기고 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기가 강군의 제1 요소임은 군에선 기본 중 기본으로 통한다.

특히 수십년째 분단 상태로 적과 대치 중인 대한민국에서 군의 사기 앙양은 안보 역량 강화와 경제 안정에 직결되는 과제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군이 국방 최일선을 지키는 보람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있는지는 의문이다.

◆복지는 사기의 기본요소

軍가산점은 못 줄 망정…'군바리' 소리 들으며 전선 지키겠나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음에도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은 군 사기를 추락시키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군을 애정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질타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수없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묵묵히 안보 최일선을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군이 제대로 싸울 수 있게 하려면 그에 걸맞은 물적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국방 예산은 매년 국회의 단골 삭감 대상이다.

특히 장기 복무 직업군인들이 주거 문제와 자녀 교육, 전역 후 재취업에서 느끼는 불안은 심각하다. 직업 군인들의 자가 주택 보유 비율은 2008년 기준 24.7%로 일반 국민 62.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방부의 2008년 군인복지 실태 전수조사(4년에 한 번 조사) 결과 직업군인의 가구당 평균 주택 면적은 65.5㎡(19.8평)에 그친다. 결혼 후 평균 이사 횟수는 장군 16.4회, 영관급 9.2회다.


임관한 지 30년 된 육군의 모 대령은 “주로 야전생활을 하다 보니 그동안 20번 이사를 했다”며 “잦은 전·입학으로 자녀들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군 간부의 61.4%가 전역 이후 생활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복무 장교의 50%가 45세 이하, 99%가 55세가 되기 전 옷을 벗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자녀가 중·고교에 다닐 무렵 계급정년에 걸려 전역하는 군인이 적지 않다”며 “상당수는 자기 집도 없어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한 군인이 전투를 잘한다”는 말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 알렉산더 대왕에게 강조한 가르침이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국민의 격려 절실

군의 사기 진작에 복지 개선이 전부는 아니다. 군이 명예와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더 클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10여년 전 없어졌다가 부활이 논의되고 있는 군복무 가산점 제도다.

김일생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은 “가산점 제도가 재도입되더라도 1년에 전역하는 장병 약 28만명 중 혜택이 적용되는 국가공무원 등에 응시하는 사람은 800명밖에 안 될 것”이라며 “이처럼 실효성이 크지 않은데도 군 가산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은 것은 군인에 대한 명예로운 대우를 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6·25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북한 땅에 남은 미군 유해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1995년 보스니아 전장에서 실종된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구출하기 위해 항공모함과 수백명의 해병대를 투입해 결국 살려낸 미국의 예를 들었다. 끝까지 군인을 보살피고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국가의 배려가 군 사기 진작의 요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군은 미국으로부터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 받아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무기 첨단화, 정예화가 발등의 불이고 갈 길 또한 멀다.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이 일어나자 ‘군이 너무 관리형에 치중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전투형 강군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군의 노력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학 교수는 “짧은 시기에 경제 건설에 큰 역할을 한 군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민과 군이 일체화돼야 안보를 굳건히 하고 경제 재도약의 기틀을 다질 수 있다”며 “국민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