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경제ㆍ금융지주 출범] 자산 240조ㆍ생산자 245만명 '금융ㆍ유통 대기업' 등장
농협에서 ‘금융’기능을 처음 분리한 것은 1961년이었다. 도시에 있는 농업은행 지점들을 기업은행(옛 중소기업은행)으로 분리했다. 농업경제를 육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라는 것이 당시 농협 구조개편의 취지였다.

그로부터 51년이 지난 올해 3월2일, 농협은 두 번째 구조개편을 단행한다. 이번에도 금융기능을 떼어내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떼어낸 농협 금융부문은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바뀌어 농협중앙회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1961년 구조개편이 금융을 순수하게 분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번에 단행되는 구조개편은 ‘금융부문에서 돈을 벌어 농업인을 지원하고 경제지주회사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선거로 선출되는 농협 조합장들의 모임인 농협중앙회 대의원회가 농협금융지주 회장 인사권을 갖는다. 영리활동이 목적이 아닌 농협 조합장들이 영리목적의 금융회사 경영을 결과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농협중앙회-2개 지주회사 체제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의 핵심은 신용(금융)과 경제(농업경제)부문의 분리다. 농협중앙회 산하에 있던 신용, 농업경제, 축산경제, 교육지원 부분 등 4개 사업조직을 별도 법인인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나눠 계열화하는 작업이다.

금융지주회사는 7개 자회사를 둔 종합금융그룹으로 변신한다. 농협은행, 농협생명보험, 농협손해보험이 신설된다. 기존 NH투자증권과 NH-CA자산운용, NH투자선물, NH캐피탈은 금융지주에 편입된다.

또 다른 축인 경제지주회사는 245만명의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유통·판매를 전담하는 종합유통그룹으로 태어난다. 경제지주회사에는 농협유통, 남해화학, 농협사료, 농협목우촌 등 13개 자회사가 들어간다.

주요 사업들을 떼어준 농협중앙회는 경제지주와 금융지주의 모회사 역할을 맡는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농협중앙회가 이어가게 된다. 농업인과 지역농협 지도와 지원을 담당하고, 계열사들에 대한 감사와 감독을 진행한다.

농협중앙회는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자본금을 늘렸다. 농협중앙회는 당초 자본금이 15조1700억원이었으나 정부로부터 5조원 상당의 지원을 받고, 6조2600억원은 자체적으로 조달해 총 자본금이 26조430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 중 중앙회에는 5조1300억원이 남고 나머지 15조3500억원은 금융지주회사에, 5조9500억원은 경제지주회사에 각각 배정된다.

◆협동조합 정체성 강화

농협 개혁은 ‘농협을 농업인들의 협동조합답게 만드는 것’이다. 기존 농협은 금융과 경제사업을 병행하는 종합농협이었다. 농협에서 중소기업금융 기능을 떼어내는 대신 1958년 출범한 농업은행을 통합(1961년)시킨 것은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리채 문제를 해소하고 농촌경제의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농업 부문에서 금융업을 확대해 금융부문이 비대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농업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아주는 경제사업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이 때문에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부터 금융을 경제사업에서 분리,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논의가 본격 진행됐다. 하지만 농업계 내부와 정치권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농협법이 개정돼 사업구조 개편이 이뤄지게 됐다.

농협중앙회는 농협법 개정 취지에 맞춰 경제지주회사가 농축산물 유통체계를 구축해 농업인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농축산물 판매 유통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져 농업인이 원하는 판매농협으로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성 확보가 관건

농협은 2020년까지 나아가야 할 방향인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협동조합’비전을 선포했다. 농업인과 농협, 농촌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 중앙회·지주회사·자회사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해 상생하자는 의미다.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5대 핵심가치로 △정도 경영 △창의 혁신 △녹색 사랑 △상생 협력 △사회 공헌을 제시했다.

농협이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정부는 5조원을 지원하는 만큼 농협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관리를 받으면서 농업인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금융과 유통 등의 분야에서 치열한 시장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특히 농산물 유통사업이 주축인 경제지주회사의 홀로서기가 핵심 과제다.

황의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경제지주회사는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판매처를 새롭게 개발하고, 조직과 시스템을 효율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