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평화유지군에 군용 막사 등 조립식 구조물을 납품하는 국내 한 중소기업 직원이 회사 영업비밀을 빼돌려 경쟁회사를 차렸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8일 조립식 구조물 제조업체인 C사에 근무하면서 입찰 정보 등이 담긴 영업비밀을 빼돌린 뒤, 같은 업종의 회사를 차려 유엔 국제 입찰에 참여한 혐의(부정경쟁방지·영업비밀보호법 위반)로 C사 전 직원 중국인 유모씨(35·여)와 유씨의 한국인 남편 이모씨(35)를 불구속 입건했다.


C사는 2003년부터 세계 주요 분쟁 지역에서 활동 중인 유엔 평화유지군이 쓰는 이동식 격납고와 체육관 시설 등 조립식 구조물을 공급해온 업체다. 2009년에는 유엔본부에 납품하는 조립식 구조물 국제 설계 입찰에서 1억달러 상당 물량을 수주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이 회사 해외사업부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2007년 4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이씨와 함께 18차례에 걸쳐 유엔 조달 물품 단가와 기술제안서 등 핵심 정보를 자신의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담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씨는 2009년 10월 회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남편과 공동명의로 L사를 설립했다. 유씨는 퇴사 이후에도 회사 임원의 이메일에 접속해 영업 비밀을 빼돌렸다. C사 측은 “회사 동료와의 갈등으로 퇴사한다”고 했던 유씨가 회사를 그만둔 지 몇 달 만에 회사 하청업체들에 ‘C사보다 유리한 조건에 납품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사실을 알고 지난해 3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유씨 등은 C사에서 빼낸 유엔 입찰 자료를 이용해 2010~2011년 9차례에 걸쳐 유엔에 납품하는 전선 케이블 입찰에 참여했다. C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 총 34만5000달러(한화 3억9000만원 상당)가량의 공급 계약도 맺었다. C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총 300여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유씨가 중국 하청업체 관련 업무뿐 아니라 유엔 납품을 비롯한 해외 영업 부문을 총괄하면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