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유럽연합(EU)의 한국 투자는 60%가량 증가했습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장 뤽 발레리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회장(54)은 “FTA에 힘입어 녹색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유럽 기업의 투자가 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한국에 25만3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투자 환경과 관련, “지나친 행정규제와 집행의 불확실성이 개선돼야 FTA에 따른 투자유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설립 26주년을 맞은 EUCCK는 EU 기업의 한국 진출을 지원하고 어려움을 돕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발레리오 회장은 “올해부터는 사업 영역을 넓혀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유럽 본사에서 인턴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청년 취업난 해결에도 동참할 방침”이라고 했다. 지난 24일 서울 을지로4가 국도호텔에서 발레리오 회장을 만나 지난해 7월1일 발효된 한·EU FTA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들어봤다.

▶FTA 발효 이후 어떤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선 직접적인 교역증가가 상당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교역량은 622억6000만달러로 2010년 같은 기간(528억2000만달러) 보다 17.87% 증가했습니다. 지난 한 해 기준으로는 1031억5000만달러로 전년 922억3000만달러에 비해 9.43% 늘었고요. 관세 철폐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유럽 활동도 매우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석유제품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의 유럽행 선적률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FTA로 저렴해진 유럽 상품들이 한국의 소비자 가격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격 하향 움직임은 이미 유럽의 고가 럭셔리상품에서도 일어나는 추세입니다. FTA는 또 유럽 기업의 한국 진출과 투자를 확대하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25만3000개 정도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유럽 기업의 투자동향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EU는 한국의 최대 외국인 투자자입니다. 지난해 EU의 대(對)한국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50억3000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57.4% 증가했습니다. 1962년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규모로는 650억달러를 넘었고요. EU 기업들이 한국에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은 한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다수 투자가 투기성이 아닌 녹색산업 프로젝트에서 이뤄지기 때문이죠.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FTA에 힘입어 EU의 지난해 녹색산업 투자가 5.8% 증가했습니다.”

▶한국 기업의 유럽진출도 늘고 있지요.

“한국 기업들은 높은 성장잠재력을 지닌 동유럽의 신생 산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소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죠. LG전자가 폴란드 남부 브로츠와프에 세운 공장이 좋은 예로, 약 1만3000명을 고용해 LCD(액정표시장치)모듈과 TV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동유럽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무역수지 흑자가 줄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럽금융 위기가 지속되면서 FTA의 효과가 반감된 측면이 있습니다. 선박, 정보기술(IT) 제품에 대한 유럽 수요 감소로 한국의 수출도 기대만큼 증가하지 않았죠.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수출의 유럽 의존도가 25%로 전체 기업의 유럽의존도 12%의 두 배가 넘어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럽 기업도 비즈니스에 영향을 받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요.”

▶유럽 경제인들은 재정 위기 상황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나요.

“지난달 30일에 열린 비공식 정상회담에서 영국과 체코를 제외한 EU 회원국들이 신재정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유로지역 내 회계 분야 강화와 자동화된 제재, 철저한 감시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죠. 유로존이 금융위기에서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로 여겨집니다. 유로존이 그리스 부채의 단계적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 긴축에 돌입했습니다. 단계적 구조조정은 유로존과 그리스 모두에 가장 실현가능한 대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유로존 채권의 38%가 1분기 내 발행될 예정이고 이달에는 그리스, 4월에는 프랑스 선거가 있어 문제가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위기가 다른 선진국 혹은 글로벌 재정위기로 확대된다면 한국 경제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겠지요.”

▶한국의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요.

“한국은 유럽자본에 상당히 의존적이기 때문에 유럽 은행의 허리띠 졸라매기식 대응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증권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것도 문제지요.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과 그에 따른 경기후퇴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해도 한국은 항상 준비를 해야 합니다. 외환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해 또 다른 위기에 대한 우려를 잠재워야 하는 거죠.”

▶한국의 투자환경은 많이 바뀌었나요.

“정책적인 제약보다는 정부 관료들의 정책 해석과 이행 차원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기업인들이 모든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복잡한 행정 규제들이 참 많이 있는데요, 이를 담당하는 관련 정부 담당자들은 계속 바뀝니다. 게다가 담당자들은 특정 대상을 상대로 선택적으로 규정을 적용하고 임의로 무작위 적용하기도 합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사업 위험요인으로서 부패 수준에 민감합니다. 지나치거나 불필요한 정부 규제가 바로 부패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EUCCK는 외국인들을 위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정책이 투명하고 일관적이며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거죠. 법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나와는 상관없이 법집행 기관이 이 법을 얼마나 공정하고 일관적이게 적용하냐 아니냐가 법의 효력을 결정짓게 되겠지요.”

▶유럽 투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십니까.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구매수준이 높아 매우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더 많은 EU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으로 금융서비스 전면 자율화, 서비스 산업 육성, 지식재산권(IPR) 보호 강화, 국제기준 및 검사 절차의 수용 등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외에 한국은 수출입이 중요한 국가임에도 물류분야가 매우 뒤떨어집니다. 한국의 물류 비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알려져 있고요. 향후 한국 내 EU 기업인들의 발전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FTA 효과를 더 잘 활용할 수는 없을까요.

“우선 다양한 관세인하 일정을 숙지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관세철폐 계획을 잘 활용하면 선제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원산지 규정에 대해서도 신중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FTA의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정부 보조 등에 의존하려는 기업들도 있는데, FTA시대에 적응하고 활용방안을 고민하는 능동적인 대응이 요구됩니다.”

▶EUCCK의 주요 사업 계획을 설명해주시죠.

“FTA 효과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EUCCK에도 상당히 중요한 해입니다. 이제까지는 주로 유럽 기업의 한국 진출을 도왔지만 유럽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들도 지원할 계획입니다. 자동차 부품과 화장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기업, 기계부품 제조 관련 기업들의 유럽 신규 납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의가 보유한 전 세계 연기금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부동산 투자자들의 한국 진출도 지원할 예정이고요. 이 밖에 청년 실업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유럽 기업 본사 인턴십 제공, 대규모 채용설명회 개최 등도 준비 중입니다.”


◆ 발레리오 회장은…프랑스 공군학교 출신, EADS 한국 지사장

발레리오 회장은 프랑스 공군학교 출신 항공학 기술자로 2007년부터 범유럽 우주항공전문업체 EADS의 한국 지사장을 맡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태국 지사를 두루 거친 EADS 내 아시아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0월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19대 회장에 선임됐다.

EUCCK는 한국 내 유럽연합(EU)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비영리기관으로 1986년 유럽위원회(EC)의 자금지원으로 설립됐다.

28개 산업별위원회를 통해 한·EU 간 통상 현안에 대한 조정, 산업협력, 투자유치 등 통상 및 경제협력을 위한 총괄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BMW, 바스프, 지멘스 등 900여 주한 유럽 기업과 27개 주한 EU 대사관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 서울과 부산, 프랑스 파리에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