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몰라 저지르는 증권범죄 줄어들길…"
김운전은 코스닥기업 A사의 대표이사인 김사장의 운전기사다. 어느날 김사장을 태우고 차를 몰다 우연히 그의 전화통화 내용을 듣게 된다. A사의 부도가 확정적이라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김운전은 부리나케 자기가 갖고 있던 A사 주식을 팔았다. 그는 손해를 면했다.

김운전은 이 매매가 적발되면 처벌을 받게 될까. 답은 ‘그렇다’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특정회사 내부자에게 얻은 정보를 그 회사 주식거래에 이용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경쟁의 공정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박정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47·사진) 등 5명이 이런 주변의 사례를 모아 자본시장법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을 냈다. 제목은 《사례를 통해 본 증권범죄론》.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증권범죄에 대한 책은 대부분 법학이나 증권거래 전공자를 대상으로 쓰였다. 핸드북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드물었다.

박 변호사는 책을 쓰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내고 쓰는 과정에서도 팀장 역할을 맡았다. 그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맡았던 증권사건 10건 중 2건은 피고가 법을 잘 몰라서 생긴 것이었다”며 “증권범죄는 치밀하게 저질러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른바 큰손들은 법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의도하지 않은 범법’은 주로 소액주주에게서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액주주도 자본시장법을 공부하는 게 필요하지만 변호사조차도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어려운 책이 많다”며 “쉬운 책을 직접 쓰게 된 이유”라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매스컴에 나올 정도로 큰 규모의 증권 사건만 10여건을 다뤘던 자본시장법 전문 변호사다. 1989년 사법고시(31회)에 합격한 뒤 서울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다 2001년 태평양 변호사로 이직했다. 형사 전담 변호사로 옮겨왔지만 당시 증권 관련 형사 사건이 많이 터지는 바람에 이 분야에서 자리를 굳혔다고 말했다. 책을 쓰기 위해 중학교 동창 김영삼 전문위원(전 금융감독원 팀장), 대학 동창인 이경훈 변호사(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와 의기투합했고 태평양 후배 가운데 지원자를 모아 이수창·이상민 변호사까지 합류했다. “처음에는 멋있게 해보고 싶은 욕심에 미국의 내부자거래 사례까지 영문 그대로 넣었죠. 그랬더니 지금 낸 책의 두 배 정도 되는 초고가 나오더군요. ‘아는 만큼만 진솔하게 쓰자’고 마음을 고쳐먹고 딱 절반으로 줄였죠.”

박 변호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자본시장법의 원칙은 사회적으로도 깊은 함의를 던져준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법의 취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설공주가 왕자님과 해피엔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착하게 살았기 때문 아닐까요.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착한 경쟁이 사회에 행복을 줄 거라고….”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