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분의 1. 아마츄어 골퍼가 홀인원을 할 수 있는 확률이다. 모든 골퍼의 ‘꿈‘이지만 평생 골프를 쳐도 홀인원 한 번 못하고 채를 놓아야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홀인원을 하면 3년간 재수가 좋고 동반자도 2년간 운수가 대통한다는 속설까지 있다.

평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행운을 잡은 기쁨도 잠시. 홀인원엔 상당한 비용이 뒤따른다. 모든 골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골프 라운딩 약속을 잡고 경비를 부담한다. 동반자들이 기념패를 만들어주면 따로 식사를 대접하며 선물도 증정한다.

일부 ‘기분파’들은 동반 캐디에게 수십만원대의 옷을 사주기도 한다. 싸인 플레이를 했을 경우엔 홀인원을 목격한 앞 팀 플레이어들이 그늘집에서 먹은 간식 비용까지 대신 내준다.

최근 홀인원을 한 골퍼는 “크게 한 턱 내지 않으면 쪼잔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남들이 하는 만큼 했다”며 “홀인원값이 수백만원이라는 얘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이런 골퍼들의 니즈를 파고 들어 2004년께 부터 골프보험을 팔았다. 골프보험은 피보험자가 골프장에서 상해를 입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이를 보상해주기 위한 상품이다. 그런데 여기에 홀인원,알바트로스 등과 같은 특약을 넣어 홀인원 1회에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축하금 명목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보험료는 통상 월 5000~6000원에 불과하다.

사기로 보험금을 타내려는 사람들은 어느 상품에나 끼어들기 마련이다. 골프보험에도 사기가 횡행한다는 소문이 돌았고,금융감독원에는 최근 ‘홀인원 관련 보험금 부당 청구행위’에 대한 제보가 잇따라 접수됐다. 캐디 및 동반 경기자가 공모해 홀인원 인증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보험금을 청구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들이다.

실제로 경북에 사는 A씨는 2010년 8월 보험에 가입한 지 하루만에 홀인원을 하는 등 1년간 6회에 걸쳐 홀인원을 했다며 복수의 보험사로부터 3500만원을 타냈다. 또 전북의 B씨는 2010년 12월부터 5개월 간 같은 골프장에서 3번이나 홀인원을 기록,20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2번의 라운딩은 캐디와 동반자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의 C씨도 동일한 골프장에서 5번이나 홀인원을 해 보험금 2500만원을 받았지만,이상하게도 골프장 홈페이지(명예의 전당)엔 C씨의 홀인원 기록은 1회만 나와 있었다.

금감원이 22일 칼을 빼 들었다. 금감원은 이같은 제보 내용을 기초로 최근 3년간의 자료를 분석해 홀인원 관련 부당 보험금 수령사례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박종각 보험조사실 조사분석팀장은 “골프장 관계자,캐디 그리고 동반 경기자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경기내용을 조작했을 경우엔 수사기관과 협조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사기죄에 해당하기 보험금을 환수하는 것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홀인원 보험금으로 384억원(1만1615건)을 지급했다. 손해율은 110%에 달했다. 보험료 수입보다 보험금 지출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이 기간 3회 이상 홀인원 보험금을 탄 고객은 67명으로 집계됐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