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중 빅브러더' 판치는 소셜미디어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거대한 다양성의 바다가 열린 것으로 모두들 기대하고 있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갖고, 다양한 견해를 표출하는 무한한 차별화의 시대, 말이 없는 다수가 아니라 바야흐로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메가폰을 들 수 있는 진정한 공론의 장이 열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 사회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몇 가지 사건들을 보면 진정 다양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지에 의문이 든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모 소설가가 트위터에서 스포츠스타를 비난한 순간 엄청난 악플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 며칠 전 소셜미디어에서 떠나겠다는 선언을 했다.

또 다른 진보적 평론가는 재계약을 앞둔 어느 지휘자를 옹호했다가 인신모독의 끝을 보았다. 인터넷 방송으로 인기를 모았던 한 정치인은 특정 방송국에 출연을 하고자 계획했다가 소셜미디어의 집중포화를 맞고 출연을 포기해버렸다.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모두 특정한 목소리와 행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유명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도 트위터 등에서 의견을 표명했다가 포화를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소셜미디어는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그 누구로부터 어떤 비난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를 오히려 옥죄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악플과 신상털기를 거쳐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반인은 대중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어떻게 될지를 능히 짐작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에서 통용되는 지배적인 견해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중의 표피적인 입맛에 맞는 주도적인 견해만이 횡행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이른바 모두가 모두를 검열하는 대중 빅브러더의 시대, 전례가 없을 만큼 강한 자기검열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소셜미디어는 의사소통의 속도에 있어 과거의 매체들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이는 검열의 채찍이 그만큼 더 강력하다는 의미도 된다.

이런 부정적 측면이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속성이 소셜미디어의 기술적 특징으로 인해 강화되기 때문이다. 비교심리학에서 이미 밝혀진 것처럼 남의 눈치를 많이 보아야 하고, 모난 돌이 정 맞는 특성은 우리 문화의 숨길 수 없는 한 요소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남의 눈치가 수십 배 늘어났고, 조금 모난 것도 아주 비정상적인 것이 됐다.

누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머릿속에 체화된 자기검열이 위험한 이유는 다양성을 압살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검열의 가위질을 무서워하는 것은 검열로 자신의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검열을 당해본 경험, 그리고 다른 사람이 검열당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스스로 창작의 한계를 짓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있을 때 비교가 있을 수 있고, 제3의 대안도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지금 한창 개화하고 있는 소셜미디어는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제도권의 그림자에 묻혀 있던 목소리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다양성을 진작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목소리를 내면 언제라도 찾아내 매장시켜버리겠다는 빅브러더의 모습도 있다.

소셜미디어는 중대한 기술적 진보임에 틀림없다. 이 도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 개방적이 되고,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건강한 토론과 창조력이 가득한 사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모두 같은 색깔과 디자인의 ‘노페’를 입게 되는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합법과 불법의 잣대가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목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건강한 집단이성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이정동 < 서울대 교수·科技정책 / 객원논설위원 leejd@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