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양대 노조(공공연구노조·전문연구노조)가 18개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소의 법인 통합 등을 담은 관련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시위 중이다. 연구원들 표를 의식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적극 동조하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법인 통합 내용만을 뺀 수정법안이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대표발의로 나왔고, 이상민 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는 교과위 전체회의에 법안 상정 자체를 막겠다고 12일 밝혔다.

4년에 걸쳐 가까스로 마련된 출연연구소 선진화 방안이 좌초 위기에 처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 안은 소속 정부부처가 달라 정책 일관성과 전문성이 없어 연구에 지장이 많다는 출연연구소들의 요구로 작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초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상설화됐고, 연구성과 상위평가 기관이 기획재정부에서 국과위로 변경됐다.

출연연구소들은 한 목소리로 “이 상태는 불완전하다”며 출연연 소속을 국과위로 이관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법인 통합은 감수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결국 정부부처 간 이견 등 진통 끝에 지난해 말 선진화 방안이 확정됐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법인 통합이 반대투쟁 대상으로 바뀌었다.

선진화 방안은 일부 출연연이 통합대상에서 빠지는 등 불완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관련 정책이 자주 변경돼 연구인들이 겪은 혼란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안은 출연연이 4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을 쓰면서도 저마다 높은 칸막이에 갇혀 융합과 소통을 못하는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원 명칭과 연구원장 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반대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과 연구환경 변화가 두려운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과학기술계의 이전투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KAIST는 총장과 교수들 사이에서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갈등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외국에 수출한 기술의 연구성과 책임자를 조작하고 이를 반박하는 전남대와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합리성’을 대변한다는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마저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선에 빠지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요즘이다.

이해성 중기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