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걸쳐 가까스로 마련된 출연연구소 선진화 방안이 좌초 위기에 처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 안은 소속 정부부처가 달라 정책 일관성과 전문성이 없어 연구에 지장이 많다는 출연연구소들의 요구로 작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초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상설화됐고, 연구성과 상위평가 기관이 기획재정부에서 국과위로 변경됐다.
출연연구소들은 한 목소리로 “이 상태는 불완전하다”며 출연연 소속을 국과위로 이관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법인 통합은 감수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결국 정부부처 간 이견 등 진통 끝에 지난해 말 선진화 방안이 확정됐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법인 통합이 반대투쟁 대상으로 바뀌었다.
선진화 방안은 일부 출연연이 통합대상에서 빠지는 등 불완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관련 정책이 자주 변경돼 연구인들이 겪은 혼란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안은 출연연이 4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을 쓰면서도 저마다 높은 칸막이에 갇혀 융합과 소통을 못하는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원 명칭과 연구원장 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반대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과 연구환경 변화가 두려운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과학기술계의 이전투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KAIST는 총장과 교수들 사이에서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갈등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외국에 수출한 기술의 연구성과 책임자를 조작하고 이를 반박하는 전남대와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합리성’을 대변한다는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마저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선에 빠지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요즘이다.
이해성 중기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