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선 찍었더니…랩 11조 매물 '복병'
코스피지수가 1950을 넘어선 이후 지속돼온 주식형 펀드의 환매가 마무리되면서 지수가 2000선에 안착한 뒤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증권업계의 전망이다. 지난해 1950~2000 구간에서 순유입된 1조여원의 펀드 환매가 일단락됨에 따라 외국인이 주도하던 수급에 ‘날개’가 달릴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시장에 또 따른 수급 변수가 숨어 있다. 지난해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랩어카운트(일임형+자문형)다. 2010년 말부터 변동성 장세가 시작된 2011년 8월 초까지 랩어카운트로 쏠린 자금은 11조원에 달한다. 랩어카운트의 차익 실현 매물이 본격적으로 나올 경우 증시의 상승 탄력이 둔화될 수 있다. 코스피지수 2000선 안착 여부는 랩어카운트에 달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0선 이상에도 11조원대 매물벽

강현기 솔로몬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급격한 조정을 받기 직전 ‘헤드앤드숄더 패턴’(지수가 큰 폭의 상승과 하락을 거듭해 마치 머리와 어깨를 오고가는 모양을 형성하는 것)이 나타났던 기간(2010년 12월14일~2011년 8월4일)에 ‘목선’(하단) 역할을 했던 게 2000선”이라며 “이 기간 랩어카운트에 순유입된 금액은 11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950~2000 구간에서 주식형 펀드에 유입됐던 금액(1조1000억원)보다 훨씬 많은 액수다.

강 연구원은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선 이후 랩어카운트에 가입해 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자라면, 코스피지수가 2000선에 안착할 경우 환매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시장 수익률 못 따라가는 랩어카운트

랩어카운트는 일부 대형주에 집중 투자하는 압축형 투자 방식으로 지난해 8월 이후 하락장에서 시장 평균보다 낙폭이 컸다. 올 들어 강세장으로 전환됐지만 아직 투자자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대형 증권사가 판매 중인 자문형 랩어카운트의 경우 지난 6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 수익률은 3.6%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5.8%)보다 낮았다.

전문가들은 랩어카운트를 통해 자금을 굴리는 개인자산가와 기관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은 손실만 회복되면 환매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강남지역 PB센터장은 “지난해 4~7월 랩어카운트에 가입한 투자자의 70% 정도가 10~15%의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직 환매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진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증시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올라준다면 내달께 원금 회복 구간에 접어드는 투자자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때쯤 환매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랩어카운트를 통해 일임형으로 자금을 굴리는 기관들은 포트폴리오를 분산시켜 전체 여유 자금 중 일부만 운용하기 때문에 다소 여유를 갖고 대응할 것으로 분석했다.

◆매물벽 소화되면 상승 속도 빨라질 듯

랩어카운트 매물벽이 2000선 근처에서 증시의 상승 속도를 둔화시키더라도 이 벽만 통과하면 본격적인 강세장에 접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2차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시행이 예정돼 있는 데다 주요국 경기선행지수도 반등하는 등 증시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 연구원은 “랩어카운트 매물벽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증시가 단기적인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경제 펀더멘털에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어 이 벽만 통과하면 견조한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송종현/임근호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