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 안마시술소가…
시각장애인 안마사 채용…근무시간에도 '피로회복'
인형뽑기 '한판에 100원'
젊은 직원들 '민원'에 기계 설치…스티커사진기는 여직원에 인기
“아빠, 물고기 보러가요.”
포스코에 근무하는 이 과장은 딸이 물고기를 보고 싶다고 조르면 수족관 대신 회사로 딸을 부른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서관 1층 로비에는 지하 1층부터 지상 1층까지 이어지는 9m 높이의 대형 원통형 수조가 있다. ‘포스코 아쿠아리움’으로 불리는 이 수조에는 30여종의 산호초와 40여종, 2000여마리의 열대어와 거북, 곰치 등이 있다. 시간을 맞춰가면 스쿠버 다이버가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지루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될 뿐더러 딸에게 아빠 회사도 보여줄 수 있어 자주 찾습니다. 저도 그 덕에 일과 중에도 기분 전환을 할 수 있게 되고요.”
회사는 고시공부하듯 일만 하는 곳은 아니다. 25개 카페테리아 식당을 무료로 이용하고, 수영장에서부터 야구장까지 갖추고 있는 구글이 ‘꿈의 직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펀(fun)’이다. 국내 직장들도 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재충전을 위해 다양한 ‘펀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회사에 왜 이런 게 있냐’ 싶지만, 사원들에겐 인기 만점인 펀 경영 사례들을 살펴본다.
◆“부장님 안마시술소 좀 다녀올 게요”
한국야쿠르트에 근무하는 이 대리는 과음한 다음날이면 종종 ‘안마시술소’를 찾는다. 그것도 한창 근무시간인 오후 3시께, 상사에게 떳떳하게 보고까지 하고 다녀온다. 서울 잠원동 한국야쿠르트 본사 내에 설치된 ‘안마시술소’다.
한국야쿠르트는 지난해 6월부터 사내에서 안마를 받을 수 있는 ‘헬스키퍼실’을 열어 사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회사가 직원들의 건강관리 차원에서 안마사 자격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3명을 ‘헬스키퍼’로 채용해 운영하고 있다. 이용시간은 근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요금은 30분 3000원,1시간 6000원이다. 최근에는 오십견예방프로그램, 산후요통완화 프로그램, 견비통 등 증상에 따른 2주 맞춤형 코스도 신설했다.
초기에는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 안마를 받는다는 것에 부담스러워했으나,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료 안마 시연회를 연 이후에는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다. 하루 이용자는 본사 직원의 10% 안팎인 25~30명이다. 현재 전국 지점으로 소문이 퍼져 “지방에도 조속히 ‘헬스키퍼’들을 채용해달라”는 요청이 늘어나면서 한국야쿠르트 기업문화팀은 이 제도의 전사 확산을 검토 중이다.
LED(발광다이오드) 렌즈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애니캐스팅에 근무하는 도 대리는 최근 와인 공부를 시작했다. 퇴근 후 동료들과 와인을 자주 마시게 되면서 와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서다. 도 대리가 동료들과 와인을 마시기 위해 찾는 곳은 사무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무실 안에 위치한 작은 카페다.
이 카페는 평소 직원들이 직접 아이스 카페모카, 카푸치노 등 다양한 커피를 만들어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퇴근시간 이후로는 와인바로 변신한다. 카페에 설치된 와인셀러에는 수십종의 와인이 있고 직원이라면 누구든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친한 동료들과 멀리 갈 필요없이 회사에서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어 편합니다. 와인동호회를 만들자는 얘기도 나오고 회사 분위기가 더 좋아졌어요.”
◆인형 뽑기부터 자전거까지
“아,뭐야… 거의 다 집어올렸는데….” 웅진코웨이의 강 대리는 인형 뽑기 기계에서 강아지 인형 하나를 집어 들어올리다가 떨어뜨리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 주임이 ‘내 차례’라며 “한판만 더하겠다”고 사정하는 강 대리를 밀쳐낸다. 서울 소공로 웅진코웨이 본사 13층의 풍경이다.
이곳에는 생뚱맞게도 인형뽑기 기계와 스티커 사진기가 있다. 정수기,비데 등 이 회사의 주력제품과는 관련이 없는 물품들이다. 지난해 사내에서 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에 도입했으면 하는 아이템’을 접수했고, 경영진이 이를 반영해 비치됐다. 인형뽑기 기계의 경우 초기에는 무료였다.
하지만 직원들의 폭발적 호응으로 순식간에 인형이 거덜나자 지금은 ‘한판에 100원’씩 받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최근 회사 관리부서 측에서 ‘안형이 잘 안 집히도록 기계의 집게발을 헐겁게 해놓은 거 같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스티커 사진기 역시 1회에 100원으로 여직원들의 폭발적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카드 여의도 사옥에는 곳곳에 놀이터가 있다. 옥상에는 건물 가장자리를 따라 도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직원들은 점심식사 후 운동 삼아 페달을 밟으면서 여의도 전망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직원들은 1층으로 내려간다. 사원증만 맡기면 여의도 일대를 누빌 수 있는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이 회사의 신모 사원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자전거가 없어 못 빌릴 정도”라며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 겸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자전거를 자주 탄다”고 한다.
◆놀면서 일한다
제일기획 마케팅본부에서 일하는 이 대리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면 올레길을 걷는다. 그렇다고 휴가를 내 제주도까지 갈 필요는 없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제일기획에는 ‘아이디어 올레길’이 있다. 사무실 전체를 하나의 길로 연결해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부서 직원들과 만날 수 있다. 함께 올레길을 걸으면서 아이디어를 나누다 벤치에 앉아 얘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다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해요. 광고회사 직원들에겐 꼭 필요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최 대리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런웨이’다. 멀리 패션쇼 행사장이 아니라 회사 안에 있는 것이다. 최근 강남으로 사옥을 이전한 코오롱FnC는 미팅과 임직원들의 휴식을 위해 사옥 5층을 카페테리아, 갤러리, 미팅룸 등으로 꾸미면서 미니 런웨이(패션 모델들이 걷는 기다란 무대)까지 설치했다. 간이패션쇼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의류를 선보일 때 내부 품평회 등의 업무에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품설명회, 미니패션쇼 등 고객초청 행사 등도 진행한다. “이전에는 큰 강당에 마네킹을 세워놓고 보는 정도였지만 런웨이가 마련돼 피팅 모델에게 직접 입혀서 워킹하는 것까지 볼 수 있게 돼 큰 도움이 됩니다.”
강영연/고경봉/윤성민/윤정현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