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연기 검증받는 '지젤' 무대…엄청 떨리네요"
지난해 12월 국립발레단의 시즌 마지막 작품 ‘호두까기 인형’ 공연 현장. 무대 위의 한 커플을 보며 관객들이 수군거렸다. “국립발레단에 언제부터 외국인 단원이 있었지?”

168㎝의 늘씬한 키, 가녀린 몸매에 큰 눈망울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이은원, 196㎝의 장신에 러시아 무용수 같은 자태의 이재우를 두고 한 말이다.

둘은 서구적인 외모와 1991년생 동갑내기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정단원이 되기 훨씬 전부터 주역을 꿰찬 ‘폭풍 신예’이기도 하다. 이은원은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역, ‘왕자호동’의 낙랑 역 등을 인턴단원 때부터 강단 있게 소화해냈다. 이재우는 객원단원 시절 ‘백조의 호수’의 로드발트 역과 ‘호두까기 인형’의 드로셀마이어 역으로 발탁돼 화려한 테크닉과 파워 있는 점프를 선보였다.

사탕나라에서의 귀엽고 발랄한 커플 연기로 호평받았던 이 커플이 이번엔 ‘지젤’에서 로맨틱 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지젤’은 시골처녀 지젤이 신분을 숨긴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져 세상을 떠나고, 숲속을 지나가는 남자들을 죽을 때까지 춤추게 만드는 윌리(처녀들의 영혼)가 된다는 내용. ‘지젤’ 연습을 막 끝낸 커플을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났다. 지난해 공연 때 지젤 역을 맡아 두 번째 무대에 서는 이은원 씨는 “나이 차이 나는 대선배들하고만 호흡을 맞추다가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와 함께하니 편하다”면서도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은 훨씬 크다”고 말했다.

둘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발레 영재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오랜 친구다. 이씨는 “재우랑 초등학교 때까지 키가 비슷했는데, 지금 무대에 같이 서면 제 키가 150㎝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며 웃었다.

섬세한 춤과 드라마틱한 연기가 특징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의 ‘지젤’은 지난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돼 우리나라 발레 열풍에 불을 지핀 작품. 국립발레단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5일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2만3394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이재우 씨는 의젓하고 성숙한 말투로 “그동안 테크닉과 체격 조건으로 주목받아 정단원이 됐을 때도 기쁨 반, 책임감 반이었는데 이번이 연기력을 검증받는 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며 “정영재 이영철 등 선배들의 연습 장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고난 체격 조건으로 발레리노의 길이 평탄했을 것 같지만 그는 “겪을 것 다 겪어봤다”고 했다. 단기간에 키가 훌쩍 커버려 근육이 힘없이 늘어나는 바람에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근력운동에 투자해야 했다는 것. 팔다리가 길기 때문에 여자 파트너와의 파드되에서도 불편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곁에 있던 이은원 씨는 “재우는 연습이 끝나도 조금 더 하고 가자며 붙잡고, 혼자서도 끊임없이 연습한다”며 “친구지만 배울 점이 많은 무용수”라고 칭찬했다.

내달 1~4일 공연하는 ‘지젤’에서 이들은 1일 오후 3시 첫 공연으로 문을 연다. 둘이 야심차게 준비한 장면은 무엇일까.

“문을 두드리고 숨었다가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처음 딱 마주치는 장면이요. 군무나 매드신 등 다른 명장면도 많지만 이 장면이 가장 설레고 좋아요. 여기서 잘 풀리면 3막까지 감정 몰입이 쭉 잘 되거든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