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게리맨더링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는 주(州) 상원 선거에서 소속 정당이 유리하게끔 멋대로 선거구를 조정했다. 선거에서 야당보다 적은 표를 얻고도 의석수는 29 대 11로 압승했다. 그가 미 독립선언문 서명자였고 4대 대통령 매디슨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걸 보면 미국 민주주의도 초기엔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나누는 것이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다. 게리가 그린 선거구의 모양새가 그리스 신화의 괴물 샐러맨더(salamander·불도마뱀)와 닮았다 하여 지역 신문이 붙인 이름이다. 게리맨더링은 원칙적으로 위헌이지만 예외는 있다. 1986년 투표권리법 제정 이후 흑인의 연방하원 진출이 용이하도록 소수계 인구가 과반수를 넘는 선거구를 용인한다. 이른바 ‘블랙 게리맨더링’이다.

일본판 게리맨더링도 있다. 1954년 하토야마 이치로 당시 총리는 개헌(자위대 창설 목적) 정족선인 의석수 3분의 2를 확보하기 위해 소선거구제로 바꾸고 선거구를 이리저리 칼질했다. 그러나 ‘하토만다(하토야마의 게리맨더링)’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어 소선거구 법안은 2년 뒤 폐지됐다. 그가 2009년 총리를 지낸 하토야마 유키오의 조부다.

아일랜드에선 1973년 당시 지방행정장관이던 제임스 털리의 이름을 따 ‘털리맨더링(tullymandering)’으로 통용된다. 털리가 수도 더블린과 주변지역 선거구를 멋대로 쪼갰다 실패한 데서 유래했다. 아일랜드는 이듬해 선거법을 고쳐 행정구역을 가르는 선거구 획정을 금지했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대다수 국가들이 선거구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구를 인구밀도, 지리적 근접성, 행정구역에 맞추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의회가 선거구를 정하기에 손이 안으로 굽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국내에서도 보은·옥천·영동은 제헌국회 이후 6차례나 선거구를 뗐다 붙였다 해 한국판 게리맨더링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울산과 고양에서 한 동네를 다른 선거구로 갈라놔 말썽을 빚기도 했다.

게리맨더링은 교과서에도 실려 중학생이면 아는 상식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선거구 획정이 여야의 나눠먹기란 비난을 사고 있다. 인구가 늘어난 곳은 의석수를 늘리고, 줄었으면 통폐합하는 게 맞다. 하지만 선거를 몇달 남겨놓고 매번 난리법석을 떠는 게 문제다. 의원들에게 제 머리를 깎으라고 했으니 그런가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