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일본 참여를 앞두고 미국 자동차 업계의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30일 보도했다. 대선을 의식한 미 의회도 자동차업체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달로 예정됐던 미·일 간 TPP 사전 실무협의는 2월에나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일본 정부의 비관세 장벽이 너무 높다는 것. 경차 규제가 대표적이다. 미국 자동차 기업 ‘빅3(GM·포드·크라이슬러)’로 구성된 미 자동차무역정책위원회(AAPC)는 “일본이 경차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히 설정해 자국 자동차 업계에 과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며 “일본이 계속 폐쇄적인 자동차 정책을 고집할 경우 일본의 TPP 참여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AAPC는 일본이 경차 기준에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도입, 외국 자동차의 수출 비용을 끌어올려 일본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엔화가치가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미 자동차 업계는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한 엔화의 가치는 달러당 75엔대가 적당하다”며 “일본 정부가 엔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협상단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엔화가치는 30%가량 급등했다”며 “일본을 어떻게든지 TPP에 참여시키지 않으려는 미 자동차 업계의 억지”라고 반박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일본시장 점유율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라는 미국 측의 주장에도 일본 정부는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기계적인 점유율 약속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니혼게이자이는 “TPP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미·일 자동차 업계 간 무역마찰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심각하다”고 전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TPP 협상에는 호주 뉴질랜드 브루나이 칠레 말레이시아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등 환태평양 지역 9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일본도 최근 TPP 협상에 참가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당사국들과의 개별 실무협상을 준비 중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