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짝사랑 담은 '월광' 뒤로 고흐 그림 보여주며 '畵音' 유도"
“베토벤이 1801년에 작곡한 월광 소나타가 아름다운 곡이라는 것만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당시 베토벤은 이탈리아 귀족인 줄리에타 귀차르디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거기, 가만히 앉아 있어 보세요.”

서울 청담동 스튜디오 ‘네오무지카’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권순훤 씨(32·사진)는 월광 소나타를 설명하다 말고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1악장을 천천히 연주하다 중간쯤 다시 돌아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귀족의 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며 이렇게 슬프면서 애절한 곡을 작곡한 거예요. 뒤로 갈수록 웅장한 부분도 많은데 이 곡의 설명을 음악과 함께 듣는 동안 고흐의 ‘별이 흐르는 밤에’가 배경으로 흐릅니다.”

가수 보아의 큰오빠로도 잘 알려진 권씨는 다음달 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2012 권순훤의 이지클래식-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를 연다.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그가 2008년부터 시작한 ‘이지클래식’은 3년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영화 사운드 트랙, 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20회를 넘으면서 클래식 인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자기 돈 써가며 일가친척 불러모아야 하는 리사이틀은 하기 싫었어요. 음악을 전혀 몰라도 듣기 쉽고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편안한 곡들을 들려주면서 누구나 재미있게 클래식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이야기와 함께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마련이죠.”

세계 명화와 함께하는 이번 콘서트에서 권씨는 클래식 선율에 숨겨진 이야기를 관객들 앞에서 먼저 들려준다. 연주가 시작되면 무대 뒤에는 음악 속의 뒷이야기와 어우러지는 명화가 등장한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지, 첼리스트 김영민, 아코디언 연주자 조미영 씨 등과 함께 바흐의 ‘예수 인간의 소망, 기쁨’과 ‘무반주 조곡 1번 프렐류드’,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 베토벤의 ‘월광 3악장’ 등을 연주한다.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학원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 우연히 예고 진학을 결심하고 선화예고에 들어갔으며, 서울대 피아노과에 입학했다.

“막내 동생 보아는 공부도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잘했고 가야금 등 음악에도 소질을 보였어요. 바로 아래 동생 순욱이는 춤에 빠져 전국 대회에서 늘 상을 받아오다가 스무 살 때 갑자기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삼수 끝에 홍익대 미대에 가더니 지금은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이 됐고요. 막내 동생이 하도 어린 나이에 톱스타가 되고 나니까 명성에 누가 되면 안될 것 같아서 오히려 오빠들이 더 열심히 살게 됐죠.”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조용하고 차분할 것 같지만 그는 여느 TV 프로그램 진행자 못지않은 입심을 과시한다. 그의 계명대 강의는 수강신청 때마다 10초도 안돼 마감될 만큼 인기다. 클래식 디지털 음원 제작자로도 활약하는 그는 음반 프로듀서로 30장이 넘는 클래식 음원을 제작했다. 서울대 피아노과 대학원 졸업 직후 영국 왕립음악원에 합격했지만 유학을 접고 디지털 음원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는 앞으로도 클래식 대중화에 힘쓰고 싶다고 했다. “체르니, 소나티네 등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필수인 학습용 음원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죠. 저의 연주 음원이 지금은 미국 사이트 아마존에 등록돼 있어요. 올해는 ‘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에 이어 ‘놀이클래식’ 연주회도 만들어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겁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