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체할 원유 수입선 뚫어라"…정유사 年3000억 '타격'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의 한국 방문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감축을 위한 한·미 협의가 본격화됐다. 우리 정부와 민간 정유사들의 고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상당한 규모’ 줄여야

정부는 미국의 이란제재 동참 요구에 대해 ‘투 트랙’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특수성을 설득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인 미 국방수권법에서 인정하는 ‘적용 유예’ 또는 ‘예외 인정’을 가급적 많이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하지만 이란산 원유 도입 물량은 한·미 동맹관계를 감안할 때 줄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요구대로 ‘상당한(significant) 규모’로 줄여야 한다.

이란에서 들여온 원유 물량은 작년 1월부터 10월까지 7423만4000배럴이었다. 총 원유 수입량의 9.7%를 차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31.4%) 쿠웨이트(12.4%) 카타르(10.1%) 아랍에미리트(9.8%)에 이은 5위권 수준이다. 국내 4개 정유사 가운데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회사는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다. SK는 연간 도입물량의 10%(하루 13만배럴), 현대는 18%(7만배럴)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대체 수입국 1순위는 사우디

정부는 이란을 대체할 원유 생산국으로 세계 1위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꼽고 있다. 미국은 이란발 유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증산 압력을 넣고 있다.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12개 회원국은 하루 석유생산 상한선인 3000만배럴을 유지키로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홍해의 지다항을 통해 수출할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유전과 지다항을 연결하는 송유관의 수송 용량이 제한적이고 중국 일본 등과의 물량 확보 경쟁으로 수입 단가가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정유사 손실 불가피할 듯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은 기존 중동 거래선에서 물량을 늘려 받거나 동남아,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들여오는 대안을 검토 중이다. 수입 단가가 낮은 이란 석유를 다른 곳으로 대체하면 각 사당 연간 최소 1억3000만달러(1500억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란산 원유 수입단가는 작년 11월 배럴당 103달러로 인근 사우디아라비아(106달러), 쿠웨이트(107달러), UAE(111달러)보다 3~8달러 낮았다. 문제는 10~20년의 장기계약이다. 대체 거래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거래선과 일단 한번 계약을 끊으면 회복이 힘든 것이 원유 거래”라며 “지난해 대지진이라는 천재지변으로 원유 정제가 힘든 상황에서도 일본 정유사들이 원유를 계속 공급받았던 것도 거래 상대와의 신뢰를 깨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서욱진/윤정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