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적자 나도 준법지원인 둬야하나
지난해 12월28일 법무부가 자산 규모 3000억원 이상인 상장 기업들에 준법지원인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17일까지 입법예고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지만 원안대로 시행령이 발효되는 경우 우리나라 전체 상장기업의 23.4%인 391개사가 준법지원인을 두어야 한다.

물론 국내외 기업환경의 변화로 경영위험이 증가하면서 각 기업들의 준법경영 필요성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이 제도를 법률로 강제할 사안인가 하는 점에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었다. 특히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변호사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여전히 밥그릇 챙기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다.

그러나 그 숨은 뜻이 무엇이든 간에 현실적으로 우리 기업들이 준법경영을 해야 생존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며, 이 제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만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의가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과 그 내용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당초 법무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안에는 준법지원인 도입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심의하던 가운데 슬그머니 의원 입법 형태로 개정안에 포함된 것이다. 당연히 사회적 불신과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떤 제도이든 간에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그 부작용 또한 크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번 시행령 안이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기회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를 무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입법예고된 시행령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누적적자 상태인 상장사도 자산이 3000억원을 넘으면 무조건 연봉 1억원이 넘는 준법지원인을 두어야 한다. 인건비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물론 지난 10년간 금융회사들의 준법감시인 운영의 예를 들어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보는 견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회사는 고객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보다는 엄격한 규범 통제가 필요하며, 부실화되더라도 정부가 항상 최종 대부자 기능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앞으로 자산 3000억원 이상인 일반 기업들은 상장폐지를 면하기 위해 경영개선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준법지원인은 감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는 대졸 신입사원 5~6명에 해당하는 급여를 준법지원인이 받을 것이라는 예상에 따른다면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올초 기준 대상 기업인 73개 코스닥 상장사 중 16개사가 지난 3분기 기준 누적 순손실 상태라고 한다. 당연히 1424개의 3000억원 미만 상장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산 늘리기를 기피할 것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가 바로 기업경쟁력 제고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 세계경제 추세에 정면 배치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이 보다 잘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더 많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을 필요로 한다. 보다 많은 기업들이 거래소에 상장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 역시 절실하다. 이 점에서 이번에 입법예고된 상법 시행령의 내용은 시대에 역행하는 입법적 과오(過誤)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특히, 이 제도가 ‘변호사 밥그릇 챙기기’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을 정부는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이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평가를 통해 법조시장이 더욱 위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어느 것보다도 공정성 확보이다. 부디 큰 틀에서 공정한 준법지원인 제도를 확립하고 정착시키는 정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삼현 < 숭실대 교수·법학 기업소송연구회장 shchun@ss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