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일자리 놓고 중·장년-청년 충돌…편의점 '알바'마저 눈치싸움
경기 성남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고송원 씨(46)는 아르바이트 종업원으로 나이가 든 사람을 선호한다. 20대 젊은이들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채용공고를 낼 때는 따로 자격조건을 명시하지 않는다. 예전에 ‘만 55세 이상’으로 제한했다가 일부 20대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씨는 “특별히 체력을 요구하지 않는 일이어서 장년층이나 노인을 선호하지만 청년 실업률이 높다보니 이 같은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기가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100세 시대’ 코앞인데 55세 퇴직

[일자리가 복지다] 일자리 놓고 중·장년-청년 충돌…편의점 '알바'마저 눈치싸움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서모 지점장(54)은 내년이면 30년 가까이 근무한 회사를 떠날 생각이다.

법적으로는 만 58세까지 다닐 수 있지만 55세 때 그만둬야 퇴직금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그는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했다. “은행 선배들은 퇴직 후 잘해야 중소기업에서 자금관리를 맡거나 보험 영업을 하고 있다”며 “자녀 교육과 국민연금 개시 시기를 감안할 때 최소 10년 이상 더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은퇴를 앞둔 사람들은 퇴직한 뒤에도 상당 기간 일을 하고 싶어한다. 시장조사회사인 트렌드모니터가 작년 말 월평균 350만원 이상 근로소득이 있는 만 45~53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은퇴인식을 조사한 결과 ‘희망 은퇴연령’은 평균 62.6세였다. 평균 57.3세에 퇴직(고용노동부 조사)하는 국내 사정과 큰 차이가 났다.

◆임금피크제 등 정년연장 움직임

은퇴 시기가 지나도 계속 일을 하겠다는 열망이 만들어낸 제도가 임금피크제다. 임금이 줄고 퇴직금이 깎이지만 대신 정년이 늘어나는 제도다.

공기업에 다니는 윤모 부장(54)은 지난해 임금피크제를 선택했다. 그는 “회사에서 자녀 학자금을 지원받는 것을 생각하면 임금이 줄더라도 최대한 오래 다니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가장 빨리 도입한 곳은 신용보증기금이다. 이 회사는 2003년 공기업으로는 처음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작년에만 전체 정원의 7.5%인 151명이 임금을 깎는 대신 정년을 연장했다. 신보의 올해 임금피크제 신규 적용 대상은 157명이다.

◆청년 채용감소 우려 해소가 관건

문제는 임금피크제로 기존 직원들의 퇴직 시기가 늦춰지면서 신규채용도 덩달아 줄었다는 사실이다. 2003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150여명씩 대졸자를 채용했던 신용보증기금은 이후 50명 안팎으로 대폭 줄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공기업 정원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장년층 고용을 확대하면 청년층 채용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퇴직 시기를 일괄적으로 늦추는 정년 연장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자산공사(캠코)는 2006년 정년을 연장한 이후 2년간 대졸 신입사원을 한 명도 뽑지 못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에선 일자리를 둘러싼 중장년층과 청년층의 갈등이 표면화하기도 했다. 한국전력 노사는 정년을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56세부터 적용하기로 2010년 합의했다. 하지만 청년층의 심각한 구직난을 우려한 정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말만 임금피크제일 뿐 실제로는 퇴직시기를 일괄적으로 늦추는 ‘변형된 정년연장’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전이 당시 노사합의대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매년 신규채용 규모를 종전의 3분의 1로 줄여야 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당면 과제인 청년실업 해소와 상충된다”며 한전 노사합의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한전은 ‘선택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청년 채용을 늘리는 쪽으로 타협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둘러싼 장년층과 청년층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정년연장 등 고령자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을 시행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최근 수년간 논의해온 ‘정년 60세 법제화’ 문제도 청년 실업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무산됐다. 임금피크제나 단시간근로제 등이 기존 취업자에게만 유리하다는 청년층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