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선율] 쾌락의 광풍 지나간 숲속, 요정과 사티로스 '옹기종기'…아이 재롱에 모처럼 평온
디오니소스의 꽁무니를 바짝 쫓아다니는 목동의 신 사티로스(판)는 천하의 골칫덩이였다. 얼굴은 사람의 형상인데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한 사티로스 무리가 이 술의 신을 쫓아다닌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감성과 관능의 화신이었던 자신들의 본능을 발산하는 데 있어 디오니소스만큼 강력한 지도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주인을 따라 세상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포악한 행동을 일삼아 사람들을 공포와 광기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들이 디오니소스를 쫓아다닌 또 하나의 이유는 포도주를 마음껏 얻어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의 나른한 상태야말로 사티로스가 꿈꾸는 삶의 이상이었는데 포도주는 그런 상태를 지속시키는 강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못말리는 관능의 화신이기도 했다. 포도주의 알딸딸한 취기는 평소 그들이 연모하던 요정들을 향한 정염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들었고, 그런 포도주의 힘을 빌려 가냘픈 여인들을 괴롭혔다.

한번은 괴성을 지르며 시링크스라는 요정을 집요하게 쫓은 적이 있는데 강에 다다라 궁지에 처한 이 요정을 강의 요정이 불쌍히 여겨 갈대로 둔갑시켰다. 판은 갈대를 꺾어갖고 불며 놀다 이것으로 팬플루트(시링크스)라는 관악기를 발명했는데 여러 개의 플루트를 마치 빨래판처럼 잇대어 놓은 모양이었다.

이들이 이성을 잃고 소리 지르고 발광하는 모습은 올림푸스를 침범한 타이탄이 기겁해서 달아날 만큼 광적인 것이었다. 오늘날 극단적 공포를 의미하는 ‘패닉(panic)’이란 용어는 바로 이 사티로스, 즉 판(pan)의 광란적 행동이 초래한 공포심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티로스는 그렇게 무늬만 목동의 신이었을 뿐 언제나 정욕과 나태함 속에서 살았다.

이렇게 목적 없이 쾌락에만 탐닉하고 감성에 자신을 맡기는 룸펜 같은 사티로스의 독특한 캐릭터는 인간의 내면, 무의식의 영역 등 현실 너머 세계를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19세기 말 상징주의자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다. ‘화요회’ 모임을 통해 그런 움직임을 주도했던 시인 말라르메(1842~1898)는 이 신화적 존재를 ‘목신의 오후’를 통해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사티로스가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르네상스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고전 문화가 재발견되면서 이성과 함께 감성의 영역도 조명받게 된 것이다.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 티치아노는 물론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 등 수많은 화가들이 숲의 요정들을 괴롭히는 사티로스를 즐겨 그렸다. 사티로스와 요정의 결합은 자손의 번성과 풍요를 의미했기 때문에 당대 미술 후원자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였다.

폴 브릴(1554~1626)이라는 플랑드르(오늘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화가도 사티로스를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형 마티스를 따라 이탈리아에 온 그는 형이 일찍 죽자 형이 주문받아 놓은 작품들을 뒷수습하다 아예 눌러앉았다.

브릴은 로마에 거주하면서 주로 귀족 저택의 프레스코 벽화를 그렸는데 정작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은 캔버스에 그린 풍경화였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플랑드르 풍경화를 바탕으로 여기에 이탈리아의 신화적 이상세계를 결합한 그의 이국적 풍경화는 로마인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님프와 사티로스가 있는 풍경’(1623년)은 그런 절충적 화법을 잘 보여주는 만년의 대표작이다. 우선 고요한 대자연의 풍경을 보여주는 3단 구도는 화가가 북구의 고향에서 배워온 것이다. 당시 플랑드르에서는 상상력을 동원, 자연의 웅혼한 기상을 신비롭게 묘사했는데 이 그림에서도 그런 특징은 뚜렷이 드러난다. 화면 좌우에 자리잡은 구불구불한 형상의 고목과 그 뒤 키 큰 나무들은 마치 자연에 깃든 신성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림 속의 선율] 쾌락의 광풍 지나간 숲속, 요정과 사티로스 '옹기종기'…아이 재롱에 모처럼 평온
특히 전경을 갈색, 중경을 녹색, 원경을 회청색으로 묘사하는 색 원근법은 플랑드르 고유의 투시법이며 꼼꼼한 세부묘사 역시 고향의 전통을 빌린 것이다. 원경의 구릉이 마치 하늘에 녹아드는 듯한 표현은 르네상스 풍경화의 대가 요아킴 파티니르에게서 배운 것이다.

물론 화가는 이탈리아 미술의 전통을 덧붙이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그 점을 우리는 그림 오른쪽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사티로스와 님프(곧 요정)가 어우러진 그리스의 신화적 요소다. 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이던 두 정령이 모처럼 사이좋게 둘러앉아 어린아이의 재롱을 즐기는 모습으로 보아 이 작품은 사티로스가 결혼으로 안정을 얻은 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이성과 질서를 중시하는 ‘아폴론적인 것’뿐 아니라 방종한 ‘디오니소스적인 것’도 인간 존재의 완성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브릴이 구현한 사티로스의 세계는 바로 요정과의 결합을 통해 내면의 평정을 얻은 균형과 조화의 이상적 경지인 것이다. 그것은 패닉이 사라진 판의 세계다.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드뷔시 '목신의 오후를 위한 전주곡'

나사 풀린 감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목신(牧神) 사티로스의 나른한 심리상태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클로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를 위한 전주곡’은 우리에게 그 답을 절묘하게 제시해준다.

오수에서 막 깨어난 사티로스가 님프와의 관능적 사랑을 몽상한다는 내용을 마치 꿈꾸는 듯한 분위기로 묘사한 이 곡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를 바탕으로 작곡한 것이다. 그러나 드뷔시는 이 곡을 작곡할 때 자세한 시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상만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티로스의 미묘한 심리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멜로디와 리듬, 하모니에 의존하는 전통적 작곡 기법에서 벗어나 5음계를 비롯한 혁신적인 작곡 방식을 도입,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변의 우려와 달리 1894년 12월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뒀고 드뷔시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플루트로 시작되는 10여분간의 매혹적이고 나른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티로스가 된 자신을 발견하리라.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이보다 큰 음악적 묘약은 없다.

▶QR코드를 찍으면 명화와 명곡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