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SKC&C SK가스 등 SK그룹 계열 3개사는 지난 10일 저녁 비슷한 내용의 공시를 내놓았다.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 부회장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됐으며, 한국거래소가 자신들을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 예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공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경영진이 기소됐으나 회사가 입은 손해는 없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외부 펀드에 투자했다’는 내용이다. 검찰 수사결과 및 거래소의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 예고에 억울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읽혀진다.

사건은 지난해 11월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이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을 회삿돈 횡령 혐의로 수사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거래소는 사건에 관계된 SK텔레콤 등에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조회공시를 요구받은 회사들은 한결같이 ‘사실무근’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지난 5일 계열사 자금 188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을 기소했다. 이를 근거로 할 때 ‘사실무근’이라는 두 달 전의 공시는 허위공시였다는 것이 거래소의 판단이다.

SK텔레콤 등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SK 계열사들이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등에 투자한 것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사실무근’이라는 최초의 공시는 경영진의 혐의를 감추거나 투자자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단순한 보도만 갖고 합법적으로 투자한 건에 대해 문제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SK텔레콤 등이 최초 공시를 내놓을 때부터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회사와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면 ‘확정된 바가 없다’거나,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다시 공시하겠다’는 식의 모호한 답을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단정적인 답변을 내놓는 것은 자칫하면 허위공시가 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의 혐의가 사실인지 여부는 앞으로 재판을 통해 가려질 문제다. SK그룹의 주장대로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그렇지만 최고경영진이 기소된 사건을 ‘사실무근’이라고 단정한 것은 투자자들의 불신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유승호 증권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