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해 마지막 날 밤에 기습적으로 소득세 최고 세율을 신설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종전 과세소득 8800만원 초과자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35% 최고 세율을 매기던 것을 과세소득 3억원 초과자들에게는 38%의 세율을 새로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부자증세’ 바람을 타고 인기영합용으로 졸속처리한, 말 그대로 누더기 세법 개정이다.

세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는 하지만 세금을 거둘 때에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경제는 물론 나라 살림과 납세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져야 하고 다른 세금과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또 공정해야 하고 당위성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번 소득세법 개정은 이중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땜질식 입법의 전형이다. 굳이 증세가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걷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선 각종 비과세 감면부터 정비하는 게 순서다. 현재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41%에 해당하는 840만명이 소득세를 한푼도 안내고 있고 각종 농업 비과세 규모만도 2조4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세 비과세 감면액이 30조6000억원으로 총 국세수입의 14%에 육박한 것도 모두 줄줄 새나가는 세금 감면 때문이다. 이 중 일부만 줄여도 3억원 초과 소득자들로부터 걷는 추가 세금(7700억원 추정) 정도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주식양도차익에 대해서도 더 이상 비과세 혜택을 줄 이유가 없다. 가구별 소득격차를 심화시키는 부부합산 과세만으로도 추가 세수확보가 충분히 가능하다. 기획재정부조차 소득세법 개정에 반대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번 세법 개정은 결국 ‘반(反)부자 캠페인’ 에 불과하다. 부자에 대한 증오세의 일종인 셈이다. 부자를 ‘왕따’시켜 대중의 환심을 사겠다는 이런 식의 발상은 그러나 얼마나 비열하고 부도덕한 일인가. 굳이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면 그 재원 역시 중산층도 부담하는 보편적 세금으로 충당해야 마땅하다. 소수 부자들을 볼모로 한 위험한 불장난은 공허한 계급의식 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