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관용'이 절실한 2012년 새해
2012년 임진년 새해에 떠오르는 태양이 눈부시다. 매일 아침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인 것은 맞지만, 새해의 태양은 유난히 붉고 장엄하다. 왜일까. 우리에게 무언가 손짓하며 무슨 결단이라도 하라는 몸짓 때문인가. 그건 담배를 끊으라거나 술을 줄이라는 경고일 수도 있고 새 삶을 설계하라는 주문일 수도 있다. 물론 새해를 맞아 개인의 일상을 새롭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일상을 새롭게 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할 터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일정은 예사롭지 않다. 이미 북한에서는 37년간 철권통치하던 독재자가 죽었고 그 이후의 권력판도가 불확실하다. 3대 세습이라고 하지만, “왕후장상에 씨가 있느냐”고 하는 집단적 자성이 북한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가 하면 2012년은 우리에게도 정치선택의 해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과 대통령을 뽑는 대선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정치변혁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공동체 전체가 선거의 역동성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선거의 해는 유난히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해다. 너와 내가 하나라는 동류의식보다는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심지어 다르더라도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하는 이질감이 뼛속깊이 스며들기 십상이다. 선거 때처럼 너와 내가 이념은 물론 지역도 다르며 세대가 다르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때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다름이 우리에게 호기심이나 신선함보다 적대감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득 지난해 서울시장선거가 생각난다. 온갖 험담과 중상모략이 쏟아지니 ‘나꼼수’가 따로 없었다. 사실이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전방위로 돌팔매질을 했으니, 악동들이 연못에 돌을 던져 개구리를 죽게 만들었던 우화의 상황과 다를 게 무엇인가. 과연 자기주장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바로 그런 유형의 생각이 관용이다. 사실 우리는 그런 관용의 정신을 종교의 영역에서 실천해왔다. 우리사회엔 불교와 유교, 개신교, 천주교가 있지만, 종교전쟁은 없다. ‘하느님’과 ‘하나님’은 다르지만, 석가탄신일도 공휴일이고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도 공휴일이다. 이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또 그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관용의 정신이다. 따라서 나와 네가 꼭 하나가 될 필요는 없지만 나와 네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금년은 확실히 우리가 관용의 정신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의지를 시험받는 해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가족으로 살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감하고 있다. 한 부모의 뱃속에서 태어난 자녀라도 같은 것은 없다. 가족공동체라고 하나 세대간 갈등은 물론 지역과 이념갈등도 있다. 어린 자녀들조차 부모와 같이 놀러 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또래와 같이 지내기를 즐긴다.

또 선거 때가 되면 부모가 좋아하는 후보가 자신의 후보가 다르다고 해서 말다툼도 하고 아예 선거일을 맞아 2박3일간 효도관광예약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는 영남출신인 반면 어머니는 호남출신인 경우도 흔하다. 그럼에도 가족간의 정이 끈끈하다면, 그 비결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음’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그걸 ‘대동소이(大同小異)’라고 한다.

정치공동체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이념도, 고향도, 세대도 다르고 그 밖에 다른 것도 많지만, 같은 것은 오히려 더 많고 유대감을 나눈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더 절실하다. 그래서 함께 사는 것이다. 2012년 새해에 떠오르는 저 태양이야말로 이 ‘대동소이’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