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역린(逆鱗)을 두려워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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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국제부장 forest@hankyung.com
용의 해가 밝았다. 한 해의 띠를 규정하는 12지(支)의 상징물 중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인간의 상상력 안에 사는 용은 하늘을 날고, 바다를 지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용(龍)이란 글자는 절대적 힘과 권위를 가진 인간세상의 제왕을 뜻하기도 했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고 했고, 왕이 입는 옷은 곤룡포(袞龍袍)로 불렸다.
용이 절대자를 상징한다는 것은 ‘역린(逆鱗)’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중국의 고서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말로 용의 목 아래에 다른 비늘과 반대방향으로 난 비늘을 일컫는다. 잘못 건드리면 용이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몽땅 죽여 화를 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은 임금의 심기를 어지럽히면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통한다.
우리가 만든 역린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곳엔 절대자인 왕이 없다. 오히려 사법분야 공복(公僕)인 판사가 ‘가카새끼’ 운운하며 최고권력자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역린은 존재한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우상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고, 그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표(票)라는 우상을 섬기는 인기영합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작년 말 통과된 올해 예산에는 야당조차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취업활동수당(취업성공패키지) 1500억원이 배정됐다. 무상급식안을 놓고 서울시민들이 투표를 벌일 때 포퓰리즘에 승복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여당이 만든 조항이다. 무상급식투표처럼 표라는 우상의 역린을 건드렸다가 서울시장 자리까지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하지 말자고 한 것 같다. 대통령선거와 총선거를 치르는 올해 얼마나 많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또 거기에 좌절해야 할 것인지 벌써부터 아찔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믿고, 그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끼리 패거리를 지어 자신들의 진리를 ‘창출’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만들어진 진리’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우상이 되고, 그것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다.
우상을 부수자
BBK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유죄를 확정한 이상훈 대법관은 SNS 공간에서 ‘신상털기’를 당했다. 대중의 관음증에 편승한 야수적 공격으로 이 대법관과 그의 가족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그는 작년 9월 문화방송의 PD수첩이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관련 프로그램이 무죄라고 판결했을 때 온라인에서 ‘개념있는 판사’라는 칭송을 들었었다. SNS의 역린을 건드린 결과는 참으로 무섭다.
새해에는 역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겠지만, 감춰서만 될 일이 아닌 것도 많다. 포퓰리즘과 SNS란 우상을 부숴버리는 일이 그것이다. 상처가 곪아 뼈속까지 상하게 놔두는 것보다는 고름을 짜내는 게 백번 옳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안다.
조선 성종 때 대사간을 지낸 최한정은 “임금께 간쟁(諫諍:국왕의 과오나 비행을 비판함)하는 신하 7명이 있으면 천하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우상의 역린을 건드리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이게 60년 만의 흑룡해를 맞는 우리들에게 진정 필요하다.
조주현 국제부장 forest@hankyung.com
용이 절대자를 상징한다는 것은 ‘역린(逆鱗)’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중국의 고서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말로 용의 목 아래에 다른 비늘과 반대방향으로 난 비늘을 일컫는다. 잘못 건드리면 용이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몽땅 죽여 화를 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은 임금의 심기를 어지럽히면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통한다.
우리가 만든 역린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곳엔 절대자인 왕이 없다. 오히려 사법분야 공복(公僕)인 판사가 ‘가카새끼’ 운운하며 최고권력자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역린은 존재한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우상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고, 그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표(票)라는 우상을 섬기는 인기영합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작년 말 통과된 올해 예산에는 야당조차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취업활동수당(취업성공패키지) 1500억원이 배정됐다. 무상급식안을 놓고 서울시민들이 투표를 벌일 때 포퓰리즘에 승복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여당이 만든 조항이다. 무상급식투표처럼 표라는 우상의 역린을 건드렸다가 서울시장 자리까지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하지 말자고 한 것 같다. 대통령선거와 총선거를 치르는 올해 얼마나 많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또 거기에 좌절해야 할 것인지 벌써부터 아찔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믿고, 그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끼리 패거리를 지어 자신들의 진리를 ‘창출’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만들어진 진리’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우상이 되고, 그것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다.
우상을 부수자
BBK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유죄를 확정한 이상훈 대법관은 SNS 공간에서 ‘신상털기’를 당했다. 대중의 관음증에 편승한 야수적 공격으로 이 대법관과 그의 가족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그는 작년 9월 문화방송의 PD수첩이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관련 프로그램이 무죄라고 판결했을 때 온라인에서 ‘개념있는 판사’라는 칭송을 들었었다. SNS의 역린을 건드린 결과는 참으로 무섭다.
새해에는 역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겠지만, 감춰서만 될 일이 아닌 것도 많다. 포퓰리즘과 SNS란 우상을 부숴버리는 일이 그것이다. 상처가 곪아 뼈속까지 상하게 놔두는 것보다는 고름을 짜내는 게 백번 옳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안다.
조선 성종 때 대사간을 지낸 최한정은 “임금께 간쟁(諫諍:국왕의 과오나 비행을 비판함)하는 신하 7명이 있으면 천하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우상의 역린을 건드리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이게 60년 만의 흑룡해를 맞는 우리들에게 진정 필요하다.
조주현 국제부장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