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소년원 합창단
‘노래는 시간의 허방처럼 깊고/흑단의 긴 생머리 찰랑찰랑이던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윤기로 넘실 넘실거렸습니다…/ 나는 좀 더 가까이 듣기 위해 내 안으로 귀를 말아 넣습니다/ 가는 혈관을 따라 번져가는 힘센 사랑이/ 내 휴식의 텅 빈 활선을 따라 번져갑니다….’ (신지혜 ‘죽은 여가수의 노래’)

음악의 효능은 심리 안정이나 정서 순화 등에 그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신체 기능까지 향상시킨다는 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바스티안 교수팀은 노래를 부르면 면역 체계가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성가 대원들의 노래 부르기 전과 후의 혈액 성분을 검사해보니 부른 뒤에는 항체로 작용하는 단백질과 항스트레스 호르몬의 농도가 짙어졌다는 설명이다. 불가리아 정신과 전문의 게오르그 로자노프 박사는 특정 리듬의 음악을 들으면 심장 박동이나 뇌파가 그에 맞춰 반응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베네수엘라의 음악가이자 경제학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창안한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는 음악의 힘을 실제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아브레우 박사가 카라카스의 빈민가 아이들 11명에게 사재를 털어 악기를 사주고 연주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1975년. 마약과 범죄에 찌든 아이들을 재활시키고 밝은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효과는 놀라웠다. 거리를 배회하던 아이들은 소속감을 갖게 되고 질서와 책임 의무 배려 등의 덕목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삶의 목표도 갖게 됐다. 지금까지 30여만명이 참가했고, LA필하모닉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같은 음악가도 배출했다.‘리듬과 화음이야말로 영혼을 관통하기 때문에 음악이 교육의 핵심’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증명한 셈이다.

김천소년교도소 재소자 18명으로 구성된 합창단 ‘드림스케치’가 그제 김천문예회관에서 마련한 ‘사랑 콘서트’가 큰 울림을 줬다. 강도 절도 등으로 복역중인 이들은 가수 이승철 씨 지도로 1주일에 한 번씩 7개월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닫혔던 마음을 열고 하모니와 사랑을 배웠다.

이날 합창단원들은 죄수복 대신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무대에 올라 ‘도라지꽃’ ‘거위의 꿈’ 등을 선사했다. 그들이 쓴 편지 내용에 이승철 씨가 멜로디를 붙인 곡 ‘그대에게만 드립니다’를 부를 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청중 1000여명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어두운 하늘 하루하루 힘들었던 날들 후회해도 소용없었고 용서도 빌어봤지만/ 지난날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기에…/내일의 태양 아래 우리 모두 함께 꿈을 꾸자.’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