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시 농업과 더불어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제약산업을 놓고 말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공세로 국내 제약산업의 기반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 · 미 FTA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에서는 약값이 35%나 급등할 것이라며 겁을 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복제의약품 허가신청시 이 사실을 원특허권자에게 통보하고 이에 대해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일정기간 제조 · 시판을 유보하는 이른바 허가-특허연계제도에 있다. 한 · 미 FTA로 이 제도가 도입되면 다국적 제약사들의 입지가 강화돼 국내 제약업계가 회복할 수 없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결국 약값도 오를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이는 심하게 과장된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복제약이 그렇듯이 특허만료일 이후에 시판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설사 그 전에 시판되고 있는 복제약이라고 해도 허가 보류에 따른 출시지연을 사전에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다. 더욱이 다국적 제약사들의 블록버스터 의약품들은 특허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약값이 급등할 것이라는 주장은 더 황당하다. 허가-특허 연계제도와 보험 약가 중심의 현행 약가결정 절차와는 직접적인 관련성도 없다.

오히려 미국과의 재협상에서 제도 도입이 3년 유예된 만큼 이 기간 동안 복제약 위주의 제약산업 구조를 혁신한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특허 의약품이나 신약, 개량신약을 보유하게 되면 허가-특허연계제도는 정반대로 우리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되고 그 수혜를 우리가 볼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제약사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나라다. 미국 시장으로 진출해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복제약으로 시작해 신약개발로 대박을 터뜨린 이스라엘의 테바나 인도의 랜박시 같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제약산업의 살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업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의 영세한 규모로는 특허약 베끼기 바쁘다. 그러니 리베이트나 의사접대로 약을 팔 수밖에 없다. 글로벌 톱 50 제약회사에 한국 기업은 아예 없다. 동아제약 등 매출액 순위 12대 제약사를 다 합쳐도 미국 화이자의 8분의 1도 안되고, 연구개발 투자는 20분의 1이다. 인수 ·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연구개발 투자를 과감히 늘려야 한다. 국제 분업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세계시장 진출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과거 개방하면 바로 망할 것이란 산업들이 오히려 개방으로 경쟁력을 키워 세계시장으로 진출해 모두 성공했다. 과자,영화,유통,전자,문화산업 등이 다 그랬다. 제약산업도 얼마든지 성공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