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국내외의 사퇴 압박에 굴복, 33년간 장기 독점한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로써 그는 지난 1월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발한 지 10개월 만에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4번째 국가 수반이 됐다.

살레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과 나이프 왕세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퇴진을 규정한 권력이양안에 서명했다고 아랍권 위성채널 알자지라가 전했다. 예멘 야권 대표들은 살레 대통령에 이어 권력이양안에 서명했다.

살레 대통령은 서명식 자리에서 "지난 10개월간의 불화는 문화와 발전, 정치 등예멘 사회의 모든 분야에 큰 충격을 줬다" 면서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파괴했다"고 말했다.

걸프협력이사회(GCC)의 중재안을 토대로 예멘 여·야가 합의한 이번 권력이양안에 따라 살레 대통령은 모든 권한을 압둘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

하디 부통령은 야당 중심의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해 90일 안에 대선을 치르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다만 살레 대통령은 차기 대선 이전까지 명목상의 대통령직은 유지하게 된다.
 
권력이양안에는 2년의 과도 기간을 갖고 국민대화를 통해 헌법 개정을 검토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부터 예멘을 방문한 자말 빈 오마르 유엔 사무총장 특사는 미국과 유럽 외교관들의 지원 아래 집권당과 야당을 중재해 전날 합의를 이끌어냈다.
 
최종 합의된 권력이양안은 그러나 시위대가 반대하는 살레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보장한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이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실제 이날도 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살레의 형사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서명식 직후 예멘 시위대는 반정부 시위의 거점인 사나 변화의 광장에서 서명된 권력이양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예멘 시위를 주도해 온 청년위원회 대변인 왈리드 알 아마리는 "권력이양안이 시위대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예멘에서는 지난 1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이래 최근까지 정부군의 강경 진압으로 15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살레 대통령은 그동안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동시에 GCC 중재안 서명 약속을 3차례나 번복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