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전판매사 하이마트가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최대주주인 유진그룹과 2대주주인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측이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우호지분 확보에 나서는 등 경영권 다툼이 확전되는 양상이다.

하이마트의 경영권 갈등은 지난달 6일 열린 하이마트 이사회에서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선 회장과 함께 하이마트 공동대표에 선임되면서 불거졌다. 당시 유진그룹 측은 "최대주주인 유진그룹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독립 경영체제로 운영하던 하이마트 경영에 유 회장이 본격 간여에 나선 것은 최근의 그룹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유진그룹은 2007년 말 1조9500억원에 하이마트를 인수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재를 만나는 바람에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주력인 시멘트 및 레미콘 사업이 불황의 늪에 빠져든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8300억원에 달하는 자산 매각과 자본 확충으로 지난 5월 그룹의 어려운 숙제였던 채권단과의 재무구조 개선약정에서 졸업했다. 그룹 경영이 정상화되자 유 회장이 하이마트 경영에 본격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2000년부터 하이마트를 이끌어온 선 회장은 유진그룹이 당초 약속을 깼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유진그룹이 인수 당시 하이마트의 사업 특성 등을 고려해 선 회장에게 경영을 전담토록 했던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우량 기업인 하이마트를 통해 유진그룹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불신도 짙다는 게 하이마트 측 설명이다.

선 회장은 22일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사실상 유진그룹 측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유진그룹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유 지분 처분과 거취문제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유진그룹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2대주주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갈등이 봉합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자 유진그룹은 결국 선 회장 퇴진 카드를 꺼내들었다. 유진그룹은 임시 주총에 앞서 열리는 임시 이사회 안건을 대표이사 선임에서 대표이사 개임(改任)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선 회장에게 퇴진을 종용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미 양측의 갈등이 봉합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마트 경영권 분쟁은 양측 간 지분 확보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유진그룹 지주회사격인 유진기업의 하이마트 지분은 31.34%다. 선 회장은 지분 17.37%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이비홀딩스 우리사주 등을 포함한 선 회장 측의 우호지분은 27.6%에 달해 유진그룹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에 유진 측은 농협 등 하이마트의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 가운데 6.9%를 콜옵션 행사로 인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인수금액은 1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 회장 측은 위임장 대결로 정면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우량기업인 하이마트를 독자 경영하는 것이 주주 이익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아 위임장 대결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태/조미현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