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난 극복의 마중물
'간난(艱難).' 가난의 본딧말이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괴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 참으로 가난한 나라였다. 길고도 고달팠던 일제 치하를 지나 한반도가 위 아래로 잘려나가다 못해 끝내는 동족상잔의 아픔까지 맛봤다. 전쟁의 상흔은 깊었고,배고픔에 지쳐 누우면 베갯잇은 때꼬쟁이 낀 눈물자국으로 얼룩져만 갔다.

1961년 우리 국민소득은 1인당 82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아프리카 가나가 179달러,필리핀이 200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우린 가진 게 너무나 없었다. 그러나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했던가. 불과 50년 만에 지금의 우리는 그들이 부러워할 만한 나라로 탈바꿈해 경제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원조자금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급속히 가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미래를 향한 과감한 투자 덕분이다. 19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논의될 당시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겨우 3만여대였다. 당시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렇게 넓은 도로가 왜 필요하냐"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경부고속도로가 우리 경제 도약의 전환점이 됐다는 건 지금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도로,교량,철도와 같은 교통 인프라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 예부터 '길'은 돈과 문화와 정보가 흐르는 통로였다. 고대 로마와 고대 중국의 광범위한 도로와 실크로드가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이다. 개발도상국들을 방문할 때마다 불쑥불쑥 도로로 튀어나오는 행인과 오토바이,자전거에 놀라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아직 못다 갖춰진 교통 인프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수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큰 강줄기가 놓여 있어 왕래가 힘든 지역도 많다. 메콩강 지류가 실핏줄처럼 펼쳐진 베트남 남부 메콩델타 지역은 다리가 놓여 있지 않아 지금도 강을 건너기 위해선 서너 시간씩 배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런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지난 4월 베트남의 젖줄인 메콩강을 남북으로 잇는 밤콩 교량 건설에 우리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2억달러를 제공키로 약속했다. 장장 3㎞에 달하는 이 거대한 다리가 완공되면 이 지역의 교통과 물류의 이동이 현격히 빨라져 베트남 경제성장이 앞당겨질 것이다.

필자는 어제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필리핀의 대표적 곡창지대인 일로일로주(州) 할라우강에 농업용수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다목적댐 건설 사업에 EDCF 지원을 적극 추진키로 합의했다. 댐이 완공돼 이 지역에 물과 전기를 풍부하게 공급할 미래를 그려 보니 왠지 가슴이 뿌듯했다.

옛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이젠 틀린 말이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