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거래制, 기업과 협의…시행착오 줄여야"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정부가 사전에 기업들과 충분한 논의와 대화를 진행해야 합니다. "

팀 여(Tim Yeo) 영국 하원 에너지기후변화위원회 위원장(사진)은 지난 11일 연세대 법학대학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한국 내 ETS 도입에 대해 기업들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고,유럽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국 하원 의원인 여 위원장은 2005년 영국 ETS 법안 통과를 주도했으며 야당 예비내각(섀도 캐비닛) 환경장관 등을 거친 환경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영국도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할 당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공감대를 얻은 것은 아니다"며 "잘못된 인센티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배출권을 할당하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ETS는 국가나 기업별로 탄소배출량을 미리 정해 놓고,허용치 미달분을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팔거나 초과분을 사는 제도다. 유럽연합(EU)은 자체적으로 ETS를 만들어 1단계(2005~2007년)를 종료하고 2단계(2008~2012년) 계획을 진행 중이다. 그는 "2013~2020년 3단계 계획까지 완료하면 탄소배출량을 1990년 대비 50%가량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 위원장은 유럽의 경험에 비춰볼 때 ETS가 탄소 감축을 위한 많은 대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탄소세는 상한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이 세금을 내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감축 효과도 얻지 못하면서 에너지가격만 오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ETS는 감축 효과 외에도 거래라는 제도의 성격상 기업들에 저탄소 기술에 대한 효율적인 투자를 촉진시킨다"며 "최근 유럽 경제가 침체하면서 배출권 가격이 낮아지는 등 경제 상황이 가격에 반영되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이 내년부터 온실가스 의무 감축을 실시하는 데 대해 '굉장히 의미있는 결정'이고 좋은 시발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ETS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의무감축국은 아니지만 경제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이미 성숙 단계에 있는 만큼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 위원장은 한국이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을 고려해 ETS 도입을 주저하기보다는 한국 상황에 가장 잘 맞게 정착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영국 정부는 제도 도입 훨씬 전부터 기업에 찾아가 세부적으로 사전 협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기업들은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1~2단계에서는 배출권을 대부분 기업에 무상으로 할당,배출권 구입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 등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EU는 3단계를 기점으로 배출권의 무상 할당을 줄이고 경매 비중을 대폭 높일 방침이다. EU 집행부가 정기적으로 배출권을 경매에 내놓으면 기업들이 구입하는 방식이다. 그는 "경매제는 무상 할당에서 발생하는 관료주의를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가 확보한 재원을 탄소 감축 인프라에 다시 투입해 제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한국도 경매 수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업계의 불만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ETS는 잘 활용하면 기업들에 이윤 창출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된다"며 "지금은 한국에서 대부분 기업이 ETS에 반대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서 2~3년 안에 자연스러운 인식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팀 여 위원장은 연세대 · SERI EU센터와 영국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기후변화 및 탄소배출권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