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알뜰주유소 입찰 불참 "밑지는 장사 못하겠다"
현대오일뱅크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알뜰주유소용 공동구매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3사는 고민에 빠졌다. 입찰 참여는 '알뜰주유소'라는 새 경쟁사에 더 싸게 기름을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지만 정부 눈치도 봐야 한다. 정유 3사는 15일 입찰 마감일까지 손익을 따져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가 공동 추진하는 대량 구매입찰에 불참한다고 9일 발표했다. 김병섭 현대오일뱅크 영업본부장은 "대산공장의 생산수급과 현재의 판매 규모나 물류시설 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 물량 추가 배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입찰에 참여해 낙찰되면 당장 시장 점유율은 높일 수 있겠지만 기존 거래 주유소나 대리점에 피해가 가고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알뜰주유소를 2015년 1300개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와 석유공사가 정유사로부터 공동 구매를 하기로 했다. 지난 3일 정유 4사를 대상으로 입찰 공고를 냈고 이달 중 공급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알뜰 주유소가 정유사에 부담을 떠넘기는 발상이고 국내 공급가를 더 낮추면 영업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어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입찰 물량이 국내 경질유 국내 시장의 4~5%에 해당할 정도로 크지만 시장 확대보다는 원칙을 선택한 것"이라며 " 3개월 기름값 ℓ당 100원 할인으로 본 손실도 10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기존 농협주유소는 공동구매를 통해 ℓ당 30원가량 싼 가격에 기름을 공급받고 있다. 정부는 공동구매로 최대 50원가량 인하된 가격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셀프주유나 사은품을 없애는 등 비용절감을 통해 기름값을 추가로 낮추겠다는 생각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낙찰되면 유통 물량은 늘겠지만 알뜰주유소 주변의 기존 주유소들도 공급가 인하를 요구할 텐데 제대로 수익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불참 정유사가 늘거나 참여하더라도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의 입찰가가 나오지 않으면 알뜰주유소 설립 취지가 무의미해지는 만큼 출발부터 삐걱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상반기와 방식만 다를 뿐 가격인하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는 수준"이라며 "제살 깎아먹기식 저가입찰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알뜰주유소

석유공사와 농협이 대량으로 공동 구매한 휘발유 경유를 공급받아 파는 주유소.정부는 농협 주유소와 일부 자가폴 주유소,고속도로 주유소를 일반 주유소보다 기름값이 ℓ당 70~100원 싼 알뜰 주유소로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