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끝낸 기분이 이럴까요. 아버지와 처음으로 가업승계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니까 10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

최완욱 수인터내셔널 부사장(28)은 "4개월 전 처음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막막함만 커져 갔는데 이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천년 장수기업을 꿈꾸는 중소기업 1 · 2세대들의 축제의 장인 '가업승계, 아름다운 바통터치' 행사가 제주도 서귀포 해비치리조트에서 4일 성황리에 막을 열었다. 한국경제신문과 중소기업청 주최,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은행 주관으로 올해 3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엔 총 75개 중소기업에서 150여명의 창업 1 · 2세대 기업인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가업승계 포럼'이 1 · 2세대 간은 물론 같은 처지의 다른 기업 1세대 간,2세대 간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한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 부사장은 "평소 승계와 관련해 말 못할 고민을 아버지는 물론 같은 처지의 다른 2세대들과 공유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고 강조했다. 최 부사장의 아버지 최택 대표(54)는 "사업 분야는 달라도 모든 1 · 2세대들의 고민은 대동소이하다"며 "재작년 행사에 와보니 '나만 와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 같이 왔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에서 운수업체 육육운수를 운영하는 임익현 대표(73)와 임효진 부장(42)도 그런 경우다. 이번이 처음인 임 부장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지만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까봐 속으로만 쌓아 두고 있었다"며 "다른 분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갖게 됐다"고 좋아했다.

올해 처음 막내 아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김윤기 한국레미콘 대표(62)는 "아들과 이런 자리할 기회가 없었지요. 저는 막내에게 레미콘 사업을 물려줄 생각을 했는데 막내는 그런 줄 모르고 있던 것 같고….저는 아들이 다른 사업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오늘 처음 알게 됐지요"라며 "행사에 참여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들과 함께 행사에 왔던 장성숙 우신피그먼트 대표(57)는 "지난해 좋은 시간을 가져 올해는 남편과도 함께 왔다"며 "가족들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나누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마음속 고민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레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다. 신정훈 중부화물 대표는 "아버지가 이끌어온 가업을 3년 전부터 직접 이끌게 됐다"며 "다른 승계 기업들과 교류하다 보니 새로운 사업 아이템도 떠오르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3회 연속 가업승계포럼에 참가했다는 황충길 전통예산옹기 대표(70)는 "함께 방문하기로 했던 아들 황진영 전무가 납기일을 맞춰야 한다며 공장에 남게 돼 아쉽다"면서도 "지난번 행사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가업 승계의 고충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받던 경험을 잊지 못해 다시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1855년 설립돼 4대째 가업을 계승,올해로 156년째를 맞는 국내 최장수 기업이다. 그는 "대를 이으면 이을수록 '제품'은 '명품'이 되기 마련"이라며 "앞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제품을 만드는 천년 장수 기업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아름다운 바통터치 행사는 천년 장수기업이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가는 뜻깊은 행사"라며 "승계 기업이 지속성장하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내는 노력을 계속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김병근/정소람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