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회사원 정모씨(38)는 매달 주택담보대출 이자비용만 130만원씩 지출하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다. 정씨는 2004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공급면적 109m²(옛 33평형)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대출이 2억5000만원으로 부담이 컸지만 지금이 서울 도심에 둥지를 틀 적기라고 판단, 과감히 대출을 받았다.

요즘 정씨는 대출받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팔 수만 있다면 집을 처분하고 싶은 심정이다. 금리가 연 3.25%로 넉 달째 동결됐지만,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모두 5차례 걸쳐 1.25%포인트 올라 이자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시중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올 들어 0.52%포인트 뛰어 5.23%에 달한다. 내년부터는 원금 상환도 시작된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는 전국에 100만 가구를 넘는다. 전문가들은 당장 집을 팔고 싶지만 시장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부채를 계획적으로 줄여나가는 '대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하우스 푸어 탈출? “매매 쉽지 않아”

현대경제연구원은 통계청의 2010년 가계금융조사원 자료를 바탕으로 하우스 푸어의 정의를 내린 바 있다. △1주택자로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고 △원리금 상환으로 생활에 부담을 느껴 △지출을 줄이고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10% 이상인 가구다. 하우스푸어의 월 평균 가처분소득은 246만원, 대출 원리금은 102만3000원으로 조사됐다.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40%를 넘는다.

문제는 더 이상 원리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어 그동안 지출된 이자비용을 손해보면서 집을 팔고 싶어도 매매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10월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이 2004년 7월 60.1%를 찍은 이후 가장 높은 60.0%에 달해 주택거래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전세금이 너무 비싸면 돈을 조금 더 보태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중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난해 말 연 4.71%에서 올 들어 0.52%포인트나 오른 5.23%(9월 기준)를 기록, 당분간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겠다는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이어지는데다 금리 추가 인상에 대한 압박, 1~2인 가구 급증 등도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 서대문구 공급면적 105m²(옛 32평형) 아파트에 살던 50대 A씨 부부는 원리금 상환 부담에 시달리다 최근 길 건너 82m²(옛 25평형) 아파트를 2억7000만원을 주고 전세로 입주했다. 기존 집은 매수자가 없어 3억8000만 원에 전세를 놓았고 차액 1억원으로 대출금을 일부 상환해 이자부담을 줄인 사례다.

◆주거비용을 소득의 30% 이내로

무턱대고 집을 파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자녀 교육이나 직장 문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파구 Y공인 관계자는 “도심 면적은 한정돼 있고 주택 수도 더 늘 수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다시 집을 구할 때 지금 같은 입지를 구하려면 더 많은 대출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하우스 푸어 생활을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출 리모델링’을 제안한다.

하우스 푸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통장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보통 급여생활자들은 다달이 정해진 날짜에 생활비, 교육비, 통신비, 적금 등이 급여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빠져나간다. 가계부를 쓰거나 신경 써서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어떤 항목에 얼마나 지출되는지 둔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통장을 열어 대출이자가 얼마나 올랐는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자비용이 90만 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랐는데 별거 아니라며 지나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통장을 확인했다면, 대출금은 절대치로 2억원 미만으로 줄여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등 주거비용을 월 평균 가처분소득 대비 30% 이하로 조정하라는 지적이다. 대출 1억5000만원에 금리를 6%로 가정하면 한 달 고정 이자비용은 75만원이 나온다. 이는 하우스푸어의 월 평균 가처분소득 246만원의 30% 정도로 ‘내 집을 위한 적금’으로 생각하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원리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거치기간을 늘리고 변동금리 대신 고정금리 또는 '변동+고정'처럼 혼합된 상품을 찾아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현재 은행권 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방식 비중은 90% 이상이다. 변동금리 방식은 기준금리에 연동해 대출금리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기준금리가 오르는 추세 속에선 가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하우스 푸어의 30%선인 33만 가구는 대출만기를 연장해야 상환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면서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상품을 찾고 금리 방식, 상환 및 거치기간 등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처분하려면 “시세보다 싸게”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집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시세보다 싸게 내놔야 한다고 조언한다. 종로구 I공인 관계자는 “보통 급매의 경우 시세보다 10~15% 싸게 나온다” 면서 “최근 전세가율이 60%에 육박하고 있어 매매가가 시세 대비 20% 이상 싸면 팔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시세 대비 20% 이상 싸면 너무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지만 대출 3억원에 금리를 5%만 잡아도 1년에 지출하는 이자비용이 1500만 원” 이라며 “급매로라도 내놓고 대출금 상환 비용을 저축으로 돌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매도자도 있다”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지금까지 낸 이자비용이 아까워 집을 팔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하반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고 집값 정체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면 매도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김민주 기자 minju1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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