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국은 내 운명
20년 가깝게 아시아와 유럽 등지의 8개 나라에서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작년 여름 아홉 번째 나라인 한국으로 왔다. 새로운 나라에 부임할 때 내게는 '3C'라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 내게 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 나라에 대한 경의(courtesy),그 나라의 문화(culture)에 대한 이해와 존중,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과의 공감대 형성(consensus)이 바로 그것이다. 이 원칙들 덕분에 나는 새로운 나라의 사람들 속에 잘 흡수될 수 있었고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로 '미소'다. 어느 나라에서건 내가 먼저 미소를 보내면 그 미소는 반드시 돌아온다.

한국이란 나라는 오랫동안 내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풀지 못한 숙제와 같았다.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고 살아도 보았지만 역사적으로 깊이 관계가 있고 가장 가까운 한국에는 정작 와본 적도 없고,친근감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회사로부터 다음 부임지가 '한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번이 내 인생의 숙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는 나의 아내는 말했다. "이건 당신의 운명이다!"

처음 소니코리아에 부임했을 때 몇 가지 걱정이 있었다. "직원들이나 사업 파트너들과의 관계는 어떨지. 시장 상황이 상당히 어려울 텐데. 미묘한 '한 · 일관계'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 하지만 직원들은 솔직하면서 따뜻했고,사업은 순항했으며,한국의 전자기업들은 소니코리아에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되어 주고 있다. 마지막 고민 때문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상점의 상인들을 대하기가 조심스러웠으나,몇 달이 지나도록 친절한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내가 불필요한 고민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의 나의 3C는,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의 역사책을 먼저 읽은 것,와서는 한국의 박물관을 가고,골목길이나 시장을 배회해 보고,한국 노래도 즐기고,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음식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는 매우 적극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식사할 때 상대방이 동의만 한다면 꼭 한국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방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사고방식이 존재하며 그 나라만의 방식이란 것이 있다. 오히려 달라서 흥미롭고,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이를 통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과 '잣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이곳에서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부임했던 곳 중에서 가장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8개 나라를 거쳐 드디어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아내의 직감처럼 한국은 나의 '운명'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서툰 미소에도 한국은 함박웃음을 돌려주고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토키 기미히로 < 소니코리아 사장 itoki@son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