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안빈낙도(安貧樂道) 얘기를 꺼내면 세상물정 모르는 딱한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정녕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다면,그 즐거움이야말로 외물(外物)에 의해 변치 않는 참된 즐거움이 아닐까. 그런 즐거움을 삶 속에서 찾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지금의 재미없는 인문학이 참으로 할 만한 학문이 되고 생기를 잃어가는 인문학이 다시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고봉 기대승의 시문집인 《고봉집(高峯集)》에 실린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를 보자.퇴계는 고봉에게 이렇게 썼다. 때는 1570년 1월이다.

'나는 지난해 사직하고 돌아온 뒤로 겨우 한 차례 사직을 청하여 윤허를 받지 못하고는 성상(聖上)을 번독(煩瀆)할까 몹시 두려워 몸을 사리고 입을 다문 채 올해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마침 나이 일흔이라 치사(致仕)할 시기가 되었기에 감히 성상께 글을 올려 모든 직임을 벗겨줄 것을 청하였으니,윤허 받지 못할 리 없을 것입니다. 만일 윤허 받지 못한다면 속속 글을 올려 기필코 뜻을 이루고야 말 작정입니다. 명분이 바르고 말이 이치에 맞으니,성상을 번독할 염려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이 소원을 이룬다면 산은 더욱 깊어지고 물은 더욱 멀어지며,글은 더욱 맛이 있고 가난해도 더욱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고봉은 그해 4월 이렇게 답했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집안에 거처하며 예전에 공부한 글들을 다시 읽으며 이치를 사색하노라니 자못 맛이 있습니다. 이에 고인(古人)들처럼 누추한 집에서 편안히 거처하며 변변찮은 음식을 달게 먹는 것을 거의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산기슭에 가깝기에 작은 초암(草庵)을 새로 지어 한가로이 기거할 곳으로 삼고자 합니다. 낙(樂)자를 이 초암의 이름으로 걸고자 하니,지난번에 주신 편지에서 "가난해도 더욱 즐거울 수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말미암아 제 마음에 바라는 뜻을 깃들인 것입니다. 산은 비록 높지 않으나 시야가 두루 수백 리로 펼쳐져 있어 집이 다 지어져 거처하면 참으로 조용하게 공부하기에 알맞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부를 하노라면 그 정경에 절로 일어나는 흥취가 없지 않을 터이니,이 밖에 세상의 부질없는 일 따위야 무슨 개의할 게 있다고 다시 입에 올리겠습니까. '

퇴계가 "산은 더욱 깊어지고 물은 더욱 멀어진다"고 한 것은 세상을 떠나 깊이 은거함을 뜻한다. 가난해도 더욱 즐겁다는 것은 공자의 '가난해도 즐거워한다(貧而樂)'는 말에서 온 것이다.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진리를 즐긴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다.

고봉이 '누추한 집에서 편안히 거처하며 변변찮은 음식을 달게 먹는 것'이라고 한 것도 안빈낙도의 삶을 말한다. 고봉이 살던 곳은 산이 높지 않다. 그래서 퇴계의 말을 받아서 '산은 비록 높지 않으나'라고 했으니,재치 있는 화답이다.

퇴계는 노병(老病)을 이유로 누차 사임을 청해 1569년 3월에야 69세의 나이로 우찬성(右贊成)을 벗고 명예직인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띤 채 돌아왔다. 고봉은 44세 때인 1570년 2월에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사임하고 귀향했다. 퇴계가 도산에 돌아온 뒤에도 계속하여 사직을 청했던 것은 이 판중추부사의 직함마저 벗겨줄 것을 원한 것이다.

퇴계와 고봉이 주고받은 편지는 100여통이 넘지만 고봉은 불과 세 차례 서울에서 퇴계를 만날 수 있었을 뿐이다. 퇴계는 인품이 겸허하고 신중한 반면 고봉은 호탕하고 과감했다. 그러나 퇴계는 문하에 출입한 사람들 중 고봉을 가장 깊이 인정했다. 그래서 퇴계가 벼슬을 그만두고 조정을 떠날 때 선조가 조정 신료들 중 누가 학문이 뛰어난 사람인지 묻자,퇴계는 "기대승은 글을 많이 보았고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통유(通儒)라 할 만합니다"하여 오직 고봉을 추천했다.

퇴계는 1569년 3월 도산서당에 돌아와서 그 이듬해 12월 세상을 떠났고,고봉은 1570년 2월 낙향하고 5월에 낙암을 완공하여 안돈(安頓)하다가 1572년 2월 조정에 가서 그 해 11월 운명하였으니,두 분 모두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삶을 채 2년도 살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 삶을 잃은 채 부질없이 각축하다가 떠나기 쉬운 세상에서 두 분은 삶의 참된 즐거움을 알고 누리다 가셨으니, 아쉽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니,글을 읽는 재미를 더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각색하여 대중을 불러 모을지라도 인문학을 하는 사람의 삶이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사람들은 인문학에 흥미를 잃게 되고 필경인문학은 학문의 권좌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른다.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www.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