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자유주의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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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영 < 국회의원 ychin21@na.go.kr >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일을 시작할 때는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법조인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실적 문제에 부딪치다 보면 개혁돼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님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정치에 발을 디뎠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깨끗한 정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능력보다는 인간적으로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패거리 정치보다 합리적 이성에 따른 정치를 하고 싶었다. 의원 배지를 달지 않고 겸허한 자세로 일하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배지를 달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켰지만 당파 · 계파 · 패거리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키기 힘든 약속이었다. 우리 정치를 분열로 이끌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계파 정치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세기 영국 정치사상가 토머스 힐 그린은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는 스스로 믿는 최선의 가치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 이런 리버럴리스트적 의정 활동을 하고 싶었다. '인격적 평등'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인격적 평등은 기계적으로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주는 게 아닌 인간다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국가발전의 한 획을 긋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다. 약소국의 설움을 딛고,주도국의 반열에 조국을 올리고자 했다. 남북한 대결관계를 통일을 향한 협력적 평화체제로 정착시키는 일에도,문화시민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정치는 나의 생각과는 다른 길로 치달을 때가 많았다. 거센 바람과 큰 물결이 휘몰아칠 때도 있었다. 구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때는 나를 '친박'으로 불렀고 지금은 '친이'로 부르기도 한다. 그토록 극복하고 싶었던 계파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것 같아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리버럴리스트 의원이 되겠다고 스스로 그렸던 그림이 무너짐을 느낀다.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나 정치 지향성이 같은 '동지적인 연대'라면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패거리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는 그런 패거리 간의 경쟁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정당으로 모이고,국회 안에서도 의원들끼리 뜻을 모아 그룹을 만들고,국회 밖에서는 유권자들이 시민단체를 만든다. 패거리야말로 정치의 기본 상수일 수 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요소들,이를테면 지연이나 학연 혹은 보스 중심의 계파에 의한 정치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한 주장은 계파의 사적 이익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보스의 한마디는 합리적 · 이성적 판단을 잠재워 버린다.
올바른 정치 문화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안겨진 시대적 과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격동기가 다가오고 있다. 말로는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지난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배지를 달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켰지만 당파 · 계파 · 패거리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키기 힘든 약속이었다. 우리 정치를 분열로 이끌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계파 정치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세기 영국 정치사상가 토머스 힐 그린은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는 스스로 믿는 최선의 가치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 이런 리버럴리스트적 의정 활동을 하고 싶었다. '인격적 평등'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인격적 평등은 기계적으로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주는 게 아닌 인간다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국가발전의 한 획을 긋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다. 약소국의 설움을 딛고,주도국의 반열에 조국을 올리고자 했다. 남북한 대결관계를 통일을 향한 협력적 평화체제로 정착시키는 일에도,문화시민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정치는 나의 생각과는 다른 길로 치달을 때가 많았다. 거센 바람과 큰 물결이 휘몰아칠 때도 있었다. 구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때는 나를 '친박'으로 불렀고 지금은 '친이'로 부르기도 한다. 그토록 극복하고 싶었던 계파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것 같아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리버럴리스트 의원이 되겠다고 스스로 그렸던 그림이 무너짐을 느낀다.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나 정치 지향성이 같은 '동지적인 연대'라면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패거리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는 그런 패거리 간의 경쟁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정당으로 모이고,국회 안에서도 의원들끼리 뜻을 모아 그룹을 만들고,국회 밖에서는 유권자들이 시민단체를 만든다. 패거리야말로 정치의 기본 상수일 수 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요소들,이를테면 지연이나 학연 혹은 보스 중심의 계파에 의한 정치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한 주장은 계파의 사적 이익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보스의 한마디는 합리적 · 이성적 판단을 잠재워 버린다.
올바른 정치 문화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안겨진 시대적 과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격동기가 다가오고 있다. 말로는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