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5 정전사태를 계기로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를 사실상 통합하는 입법안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이 전력거래소의 계통운영(수요관리) 기능을 한전에 통합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포스코 SK GS 등 민간 발전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통합할 경우 한전의 제 식구(산하 발전사) 감싸기로 민간 발전사들이 차별을 받을 것이고 결국 신규투자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는 민간 발전사들의 이런 반발을 차치하고라도 과연 이것이 정전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방지책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정 의원은 "정전사태의 근본원인은 전력계통망 운영주체와 소유주체의 이원화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통운영자인 전력거래소와 송전사업자인 한전 사이에 충분한 정보공유와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졌다면 순환정전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물론 그런 측면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통합 문제로 돌리는 이 같은 진단은 그야말로 피상적이며 형식적 진단일 뿐이다. 전력대란의 진정한 근본원인은 물가 안정 목표에 집착한 정부가 원가회수율의 90%에도 못미치는 낮은 전기요금을 지속하면서 재투자를 봉쇄해 놓고 있는 전력시장의 반시장적 구조에 있다. 정부가 전력시장에 개입하면서 수급원리가 전혀 작동할 수 없었고 설비투자가 수요를 따르지 못해 언제라도 대란이 재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전형적인 정부실패의 결과인 것이다.

한때 전력산업에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효율성도 높이자는 취지로 이른바 전력산업 구조개편(민영화)이라는 것이 시도됐지만 참여정부 들어 중단됐고,그 결과 지금 같은 어정쩡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이번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정전사태를 기회로 아예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재통합하면 지금의 잘못된 가격구조가 바로 잡힌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통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소비자 선택을 전제로 하는 스마트 그리드 같은 신산업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국회는 엉뚱한 진단으로 더 큰 문제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