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여를 끌어온 한진중공업 노사분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정리해고자들을 1년 내 재고용하고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생계비를 지급하라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권고안을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아직 정리해고자들이 권고안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완전히 분규가 타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해고자 복직이라는 원칙이 만들어진 만큼 큰 고비는 넘긴 것 같다.

문제는 한진중공업 사태가 매우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대로 이번 일은 노사문제라기보다 정치 이슈로 변질된 채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제3자와 정치권 등 외부세력 개입이 만연했고 이것이 갈등확대로 이어지면서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경영상 이유로 적법한 절차에 의해 단행한 정리해고가 정치권 개입으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기업은 생산라인을 줄이거나 이전할 수 있고 그래도 안되면 폐업을 선택하게 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경영상 판단을 정치권이 나서서 무효화 시키고 직접 중재안까지 만들어 도장 찍으라고 압박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더욱이 정치권은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 대한 법원의 퇴거명령을 뒤집으면서까지 권고안을 밀어붙였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한국에서는 창업은 할 수 있으되 감원은 물론 폐업도 할 수 없게 된다. 구조조정된 근로자들 모두가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정치권에 호소부터 할 것은 뻔한 이치다.

물론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근로자들은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 억울하고 황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복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 방법을 동원해도 상관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당혹스럽고 괴롭기는 업주도 마찬가지다. 한국서 도저히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면 생산거점을 옮겨서라도 기업을 지키려는 것이 모든 업주가 고뇌 끝에 내리는 선택이다. 큰 공장이나 작은 식당이나 이는 마찬가지다. 경영상 판단 문제를 정치적 판단으로 대체하려는 한국은 법치가 짓밟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