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종은 지난해 말 KB카드로부터 "돈을 꿔간 사람들의 담보재산에 대한 근저당권 등기 절차를 간소화하게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카드론을 받은 고객들의 수십만 건 재산에 근저당을 설정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서류를 개서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필요한 서류가 1.5t 트럭으로 여러 대 분량이었고,각각에 대해 모두 법무사를 통해야 해 비용도 수억원이 필요했다. 세종은 이를 하나의 등기로 일괄 개서할 수 있도록 대법원 법원행정처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행정처에 건의했다. 다행히 행정처는 문제점을 인정하고 금융감독원 등 기관과 협의해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부실 입법이 늘고 법제가 복잡해지면서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로펌을 찾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업친화적인 방향으로 법규를 제 · 개정하기 위해서다.

이에 맞춰 대형 로펌들은 '입법 컨설팅'이라는 이 서비스를 위해 전문팀을 구성하는 등 시장공략에 나서고 있다. 입법 컨설팅은 △법령 · 조례 제정과 개정 △유권해석 △정부 규제의 사전 대응을 아우른다. 지난해에만 국내 10대 대형로펌에서 100여건을 수임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최근 임병수 전 법제처 차장을 영입하고 지난해 15명 수준이었던 팀 인력을 올해 20명으로 늘렸다. 광장도 홍승진 전 법제처 대변인을 지난 5월 영입하는 등 10명가량의 팀을 운영 중이다.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는 사안이 많다. 대한항공은 외국인 조종사 불법 파견문제로 지난해 말 법무법인 광장을 찾았다. 이 회사 노조가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외국인 조종사는 불법파견에 해당된다"며 회사를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으로 고소 ·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조종사는 파견이 허용된 직종이 아니어서다.

이 건은 현재 검찰로 송치돼 수사 중이다. 이종석 광장 변호사는 "파견근로자보호법은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항공기 시장에서는 오히려 근로자인 조종사가 강자일 정도로 인원이 부족하다"며 "외국인 조종사 수급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과 현실의 괴리 사례다.

대한의사협회는 부가가치세 과세로 전환된 미용 · 성형 의료시술 항목을 문제 삼아 최근 한 대형 로펌을 찾았다. 지난 7월 시행된 개정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에서는 쌍꺼풀수술,코성형수술,유방확대 · 축소술,지방흡인술,주름살제거술을 과세로 바꿨다.

박진원 세종 변호사는 "비과세인 피부 미백이나 박피 등과 형평성도 맞지 않고 눈 앞트임,뒤트임수술은 비과세이면서 쌍꺼풀수술에만 과세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규정이 명확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많은 사례다.

김성호 태평양 변호사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입법 컨설팅이 일반화돼 있다"며 "변호사들이 국내의 청목회 등 불법 로비와 달리 순전히 법적 논리로 기업친화적인 법환경 조성을 위해 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