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마침내 먼저 '칼'을 빼들었다. 애플이 4일(현지시간) 공개한 아이폰4S를 대상으로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에 각각 판매금지 가처분소송을 냈다. 지금까지 '애플의 특허 소송 제기→맞소송'이란 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했던 삼성전자가 공세로 본격 전환한 것이다. 업계는 구글에 이어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약점으로 꼽혔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보완한 삼성전자가 향후 스마트폰 · 태블릿PC 분야에서 애플에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특허전쟁 확대를 들고 나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4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을 제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애플에 더 이상 밀리면 안 돼"

애플이 시장의 예상과 달리 아이폰5가 아닌 아이폰4S를 공개한 직후 삼성전자 IP센터와 법무팀,무선사업부 사이에선 5일 오전부터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삼성전자의 당초 방침은 "애플이 갤럭시탭10.1에 대해 독일 네덜란드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소송을 낸 것처럼 우리도 아이폰5 판매금지 소송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한 단계 급이 낮은 아이폰4S가 나오자 가처분소송을 내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아이폰4S는 사실상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한 수준인데 여기에 법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장고 끝에 '강공'을 택했다. '애플에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우리도 애플이 신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이폰5냐,아이폰4S냐에 상관없이 특허분쟁에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최종 결정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네덜란드 법원에서 진행된 특허소송에서 애플이 삼성전자의 통신특허를 피해가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난 점도 강공을 택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공세에 나서면서 향후 애플-삼성의 특허분쟁은 더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일단 유럽지역 법원에만 소송을 내지만 향후 미국 현지법원,국제무역위원회(ITC),호주법원 등에도 추가 소송을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방위 '애플 압박' 나설 듯

가처분소송과 함께 애플에 대한 삼성전자의 압박 강도는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이미 애플에 대한 대비책을 다양하게 마련해둔 상태다. 지난달 독일 IFA에서는 차세대 스마트폰 '갤럭시S2 LTE'와 태블릿PC '갤럭시탭 7.7',자체 운영체제(OS) '바다 2.0'을 내놨다. 또 애플에 비해 약점으로 꼽혔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텔과는 차세대 OS를 개발하기로 했고,MS와도 특허 라이선스 협약을 체결하면서 돈독한 협력관계를 맺었다. 제품과 OS 다원화,특허소송 등 삼각 축을 활용해 애플에 공세를 취할 기반을 충분히 마련해놓은 셈이다. 이런 가운데 애플이 아이폰5가 아닌 아이폰4S를 내놓으면서 향후 스마트폰 시장 주도권을 거머쥘 여건도 만들어졌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아이폰4S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경쟁사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대반격으로 향후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가 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애플과의 스마트폰 점유율 격차를 급격히 좁혀왔다. 1분기 애플이 1860만대의 스마트폰을 파는 동안 삼성전자는 1260만대를 판매하면서 600만대가량 격차를 보였지만 2분기에 두 회사의 판매량 격차는 30만대 정도로 줄었다.

주요 시장의 스마트폰 점유율 격차도 많이 좁혀졌다. 미국에선 애플의 점유율이 24.5%로 삼성전자(15.6%)를 많이 앞서고 있지만 유럽에선 애플 23.8%,삼성전자 22.9%로 '박빙'의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선 삼성전자가 2분기에 17%의 점유율을 기록,15.1%를 기록한 애플을 앞섰다. 업계 관계자는 "3분기에도 아이폰4를 내세운 애플과 갤럭시S를 앞세운 삼성전자가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이라며 "그러나 4분기엔 갤럭시S2 LTE와 보급형 스마트폰 등 라인업을 확대한 삼성전자가 앞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