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50)은 요즘 영어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혼자라면 결행이 쉽지 않았을 만학의 충동은 '절친'이자 '주치의'인 윤호주 교수(51 · 한양대 의대)가 기꺼이 동참하면서 즐거운 '낙(樂)'으로 변했다. 둘은 1주일에 두 번씩 아침 7시께 서울 시내 모처에 영어강사를 초빙해 발음을 교정하고 있다.

최 부회장의 절친으로 홍원표 삼성전자 부사장(51 · 무선사업부 상품전략팀장)을 빼놓을 수 없다. 최 부회장과 홍 부사장은 광주고 28회 동기이고 윤 교수는 이들의 1년 선배다. 이들 셋은 수시로 함께 만난다. 최 부회장이 "고교 동창 10명이 모임을 만들어 석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홍 부사장과 윤 교수는 이보다 더 자주 만난다"고 할 정도다.

셋은 살아온 인생역정은 물론 활동 분야까지 비슷한 부분이 한 곳도 없다. 그런 셋을 절친으로 만든 것은 최 부회장과 홍 부사장의 '짧지만 강한 추억'이다. 1976년 둘이 고교 1학년 전체 12개 학급에서 성적우수자만 추렸던 우수반에서 공부할 때였다.

1학년을 마칠 때쯤 최 부회장은 지병이 도져 휴학하며 요양했다. 그때 최 부회장은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홍 부사장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 없었다. 당시 홍 부사장을 포함해 몇몇 친구들은 최 부회장이 진도를 따라올 수 있도록 학습노트를 꼬박꼬박 챙겨 보내줬고,몇 차례 병문안을 갔던 것.

최 부회장은 "그때 친구들이 선물로 줬던 셔츠를 20년 동안 손목,칼라 부분이 닳아 더 이상 손볼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아껴 입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전남 강진에서 도시로 유학온 가난한 농부의 아들 최 부회장과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란 홍 부사장의 우정은 그렇게 싹텄다.

추억은 길지 않았다. 최 부회장은 1년 휴학한 탓에 동기생들보다 늦게 졸업했다. 홍 부사장이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국 미시간대에 유학하면서 둘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1년 선배인 윤 교수도 한양대 의대를 나와 호흡기내과 전공의를 거쳐 박사후 과정을 미국 예일대에서 마쳤다.

반면 최 부회장의 삶은 그야말로 '절망의 파노라마'였다. 고교를 졸업하던 1980년엔 광주민주화 운동에 휩쓸렸다. 이듬해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지만 캠퍼스를 밟자마자 징집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악몽 같았던 청년기를 한번에 '만회'할 승부수로 행정고시에 매달렸는데 3년 연속 낙방하는 좌절을 겪어야 했다.

최 부회장은 "대학입학 후 10년 만에 졸업한 뒤 당시 한신증권에 입사했을 때는 자존심이 너무 상해 친구들을 멀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최 부회장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함께 일하면서 증권맨으로 승승장구했다. 홍 부사장도 미국 벨통신연구소 프로그램 매니저와 KT 휴대인터넷사업본부장 등을 지내는 등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고교시절 짧고 강력한 추억을 간직한 둘은 다시 스스럼없는 '벗'이 됐다. 최 부회장이 1998년 가을 윤 교수에게 주치의를 부탁하면서 세 명은 수시로 만나 골프 등산 등을 즐기고 있다. 최 부회장의 재테크 분야,홍 부사장의 IT 동향,윤 교수의 건강 분야 등 최적의 전공 포트폴리오는 우정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옛 추억만을 나누는 친구 사이는 한계가 있어요. 서로 주고받을 얘깃거리가 있어야 기꺼이 시간과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절친이 될 수 있겠죠." 최 부회장,홍 부사장,윤 교수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절친론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