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완전히 피의사실 공표 처벌감입니다. " 검찰 고위 관계자는 4일 기자와 만나 얼굴을 붉히며 이같이 말했다. 표정은 상기돼 있었고,목에는 푸른 힘줄이 곤두서 있었다.

그는 최근 경찰의 제일저축은행 수사 발표에 대해 "수사 보안상 나가선 안 될 내용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30일 불법대출 혐의로 제일저축은행 유모 전무 등 임직원 8명을 검거하고 돈을 빌린 유흥업소 업주 등 9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가짜 서류로 서울의 고급 유흥업소에 1546억원을 대출해줬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의 문제 제기는 경찰의 이 발표를 향한 것이었다.

형법에 따르면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다.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공개되면 피의자 인권이 침해되고,보안이 필요한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다. 경찰이 발표한 임직원 검거나 유흥업소 업주 입건은 모두 공소 전 단계다. 법조문대로만 따지면 명백한 위법이다.

경찰의 모든 수사 결과 발표는 원천적으로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공소권이 없기 때문에 수사 결과도 공소 전 단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법원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면 위법성이 없다(조각)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찰은 수사 결과를 관행적으로 공소 전에 발표하곤 한다.

검찰은 그러나 이번은 기존 관행과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저축은행 수사는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등으로 지난달 22일부터 정부 합동수사단이 꾸려져 진행되고 있다. 어느 한 기관이 일방적으로 중간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면 전체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 방향을 알게 된 다른 피의자들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합동수사단은 출범한 지 이제 열흘이 지났다. 5일에야 현판도 내건다. 기관 간 공적 내세우기 경쟁으로 균열이 생기기에는 너무 이르다. 혹시라도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 · 경 간 앙금이 대사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