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리스크 줄여야 경제 살아난다
최근 금융 불안으로 세계경제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유럽 은행에 이어 미국의 대형 은행까지 잇따라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이제 금융불안은 전방위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며 세계경제를 장기 침체의 늪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외적 요인에 취약한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 위기 조짐만 보여도 한국의 금융시장은 가장 먼저,그리고 위기의 진원지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아 거의 패닉 상태에까지 몰린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의 펀더멘털과는 관계없이 외국 자금의 동향에 따라 증권가격과 환율이 요동친다. 이것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국인의 '셀 코리아' 바람 속에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또 다시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현재 상황은 앞으로 금융부문의 시장리스크 관리가 우리 경제 운용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세계경제에서 앞으로 금융부문은 더욱 크고 심각한 수준의 위험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세계의 금융은 하나의 거대한 선단으로 엮여 있다. 이번 사태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듯 세계의 금융은 국가를 넘나드는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각국의 재정 및 통화 정책에 의해 국가 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한 국가나 경제부문에서 발생한 작은 불씨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불길로 번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적 요인에 취약한 경제는 내부 여건에 관련 없이 외부 요인에 의해 불거진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언제든지 경제 전체를 파탄으로 몰고갈 여지가 충분하다. 또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사례에서 보듯이 금융위기는 평소에 쌓은 막대한 국부를 순식간에 유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부는 금융부문의 시장리스크 관리를 평소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 가능성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위기관리를 효율적으로 행하기 위한 조직을 정비함과 동시에 이를 위한 정책추진에 최우선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이번 금융사태의 1차적 요인은 3년 전 대형 투자은행의 몰락을 가져온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라 할 수 있다. 당시에 추진한 막대한 양적완화와 재정투입은 기대만큼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 반면,이 때의 정책추진으로 주요국들은 현재의 금융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더 이상의 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적 요인이다. 즉 국민의 투표권에 아부하는 인기영합적인 정책과 복지국가에 대한 환상은 각국에서 재정적자를 심화시킨 요인이 돼왔다. 이것은 현재 금융불안의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는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막대한 재정적자로 더 이상 위기극복의 수단을 상실한 미국 등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또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리더십 부족으로 정부의 부채한도 증액과 재정적자 감축협상이 난항을 겪게 되고 재정문제가 더욱 불거짐에 따라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으며,이것은 세계 증시 침체의 원초적 계기가 됐다. 유럽의 주요국 간 정치적 이해상충 역시 위기해결의 공조체제를 끌어내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이번 금융위기 사태에서 보듯 정치는 경제의 위기를 불러오는 첫 번째 요인임과 동시에 또 이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정치 리스크는 경제 리스크로 곧바로 전이되며 경제위기에는 정치적 해결이 요구된다. 경제위기의 회피와 극복은 훌륭한 정치적 리더십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세계 금융위기의 암흑 속에 표류하고 있다. 또 이번 위기 이후에도 세계 경제의 위험한 파고 속에 휘둘리지 않고 순항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과연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이런 위기 극복의 능력을 갖춘 정치적 리더십을 볼 수 있을까. 한국의 명운이 여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