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은 봉이다…뜯어먹는 자들이 너무 많다
뚜껑이 열린 모양이다. 시민단체의 모금 활동에서 구린내가 풍긴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주도했던 아름다운재단과 참여연대,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3각 공조체제'를 갖춰 11개 대기업으로부터 10년간 150억3746만원을 거뒀다는 폭로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참여연대가 행동에 돌입하면,기업들은 아름다운재단에 소위 '자발적인 기부'를 했다는 것이 강용석 의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외견상 독립적으로 보이는 이 세 단체의 뿌리가 같다는 점부터가 영 석연치 않다. 더욱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창설 멤버 전원이 기업을 맹비난해온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구성원이었다는 얘기고 보면 전혀 깔끔한 구조는 아니었던 듯 싶다. 박 변호사 측은 기업 비판과 후원금은 별도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때리니까 준다는 등식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사실 재벌이 시민단체의 봉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시민운동 기술자'들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월가 투자은행(IB)의 비즈니스 방식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끌고들어오면서 재벌은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말이 글로벌 스탠더드지 실제로는 교과서에도 없는 갖은 재벌 규제책들이 대거 도입됐다. 이들에 힘입어 정부 관료들 역시 외환위기의 원인을 외환 관리의 실패와 한국 금융업의 실패가 아닌 재벌의 실패로 몰아붙이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반기업 정서는 그렇게 사회구조로 정착하게 됐다. 결국 기업들은 정부와 비정부단체(NGO)들의 노골적인 공격을 받아야만 했고 '적의 적은 동지'라는 시민단체의 선동 속에 외국 투기세력들만 한국 시장에서 배를 불려온 것이 지난 10여년이었던 기업환경이다.

'지배구조 개선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타이거펀드와 소버린이 단적인 사례다. 1999년 SK텔레콤,2003년 SK주식회사를 공략한 이 두 펀드는 각각 1조원의 차익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결코 투기펀드가 아니다"며 외국계 펀드를 지지하던 시민단체들은 지금껏 한마디 사과가 없다. 오히려 소액 투자자들도 이들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며 논리도 아닌 논리를 펴왔다. 어떤 시민단체 활동가는 미국에 출장가면 사우디 왕자 대우를 받았다는 정도다. 그들을 끼기만 하면 한국서 돈벌기는 손바닥 뒤집기였다는 것이다.

다행히 SK는 이런 과정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30대 그룹 가운데 15개 그룹이 몰락했다. 15개 기업이 몰락하면서 기업 생태계는 더욱 협소해졌다. 일 안하는 자들이 일하는 조직을 두들겨 패고,뜯어먹는 구조 속에서 기업이 성장하기란 조폭 등쌀에 시달리는 노점상만큼이나 어렵다. 국내 중견기업들이 기업을 분할해 중소기업으로 남고자 하는'피터팬 신드롬'에서 헤매고 있는 이유도 대기업은 죽인다는 이런 기업생태계 규칙 때문이다.

최근에는 종편사업자들까지 이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인터넷 매체들의 공갈은 그나마 애교다. 거대 언론사들인 종편 사업자들은 개국 협찬금 등 갖은 명목으로 대기업에 거액을 요구하고 여의치 않자 돌연 반기업 캠페인에 목청을 돋우고 있다. 최근의 반MRO캠페인이나 계열사 간 거래에 대한 비판기사들이 급증한 것들이 그런 증좌다.

한국에서 대기업은 분명 봉이다. 오너들은 머리에 뿔이라도 난 악당처럼 선전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전근대적 자기혐오와 부정의 캠페인을 계속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