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권위의 제33회 메트라이프 · 한국경제 KLPGA챔피언십에서 마지막날 10언더파 62타를 몰아치며 정상에 오른 최혜정(27)은 연일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으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최혜정은 "그동안 목표를 상실한 채 외롭게 지내왔기 때문에 정말 우승하고 싶었다"며 "빨리 우승해서 저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최고 메이저대회에서 이런 영예를 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3,4라운드의 타수차가 14타예요.

"1,2라운드에서는 71타와 73타로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3라운드에서 4오버파 76타를 치고 소속사인 볼빅 문경안 회장님께 전화를 걸어 '골프 때려쳐야겠다'고 했죠.열 받아서 그날 저녁에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5잔이나 들이켰어요. 폭탄주의 힘으로 10언더파를 쳤는지도 몰라요(웃음)."

▼10개의 버디를 잡은 비결은.

"1번홀에서 9m짜리 긴 버디 퍼팅이 떨어졌어요. 전반에 버디 5개를 잡은 뒤 후반이 어려우니까 그냥 지키자고만 생각했는데 10번홀에서 또 버디가 나온 거예요. 그때 마음을 바꾸고 공격적으로 쳤지요. 버디를 6개까지 세다가 잊어버렸어요. 마지막 홀에 세컨드 샷을 하기 전 캐디인 대구 후배에게 '내가 버디 몇개 잡았냐'고 물었더니 '9개 했심니더.한 개 더 하이소'라고 하더군요. "

▼미국에서도 선수들끼리 술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하던데.

"올랜도의 비스카야 타운하우스에 한국 선수 6~7명이 한 집 건너 살아요. 그래서 돌아가면서 안주를 갖고와 술을 마셨지요. 술 마실 때는 소주를 좋아해 맥주를 알잔으로 하고 소주를 부어 폭탄주로 마셔요. 그렇게 20잔 정도는 거뜬하게 마셔요. 술로 치면 전 랭킹 2위예요. 1위는 이번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이정연 언니죠.박세리 언니도 세고요. 다음날 오전 6,7시까지 술 마시고 연습라운드 나가서 언더파 치고 그랬어요. "

▼대회 기간에도 마시나요.

"대회장에 가면 싹 바뀌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도 별로 안 해요. 처음에는 '즐겁게 술을 함께 마시던 사람들이 왜 저럴까' 싶을 정도죠."

▼선수들이 많이 축하해 주던데.

"제가 약간 여장부 스타일이라 동생들이 많이 따르긴 해요. 이번 대회 시상식 끝나고 스마트폰을 봤더니 부재중 전화 50개,문자 103개,카카오톡 메시지 87개가 왔더라고요. "

▼아버지(최정진 · 57) 생신 때 우승했죠.

"아버지는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해요. 골프를 잘 치고 정말 좋아하죠.1주일에 3번 라운드해요. 베스트 스코어는 4언더파 68타.이틀간 잘 쳤을 때는 '그래 주말에 갈게' 했는데 3라운드에서 못 치자 '잘 치고 와라' 하고 일요일에 라운드를 나갔대요. "

▼전형적인 '골프 대디' 는 아니네요.

"아버지는 제가 7년 전 미국 갈 때 1만달러와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고 플로리다 골프아카데미로 혼자 가라고 했어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혼자 알아서 한 게 피가 되고 살이 됐어요. "

▼영어도 못하는데 혼자 어떻게….

"애틀랜타공항에 도착한 첫날 마지막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에서 밤을 새웠어요. 영어가 안 되니까 보디랭귀지 써가면서 할 수밖에 없었죠."

▼징계까지 받고 미국에 갔던데.

"2003년 9월 프로가 됐는데 2004년에 국내 대회가 9개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투어가 이런 게 아닌데 그랬죠.그래서 이듬해 벌금 2000만원 내고 미국으로 갔어요. 2년간 출전정지 징계도 받았죠."


"코스설계 · 숙소 훌륭…다른 대회들도 이랬으면…"

▶LPGA투어는 2007년부터 뛰었죠.그때까지 이렇다 할 실적을 못 거둬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2004년 말 시험 삼아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해본 뒤 2005년부터 2부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뛰었어요. 랭킹 5위까지 시드를 주는데 9위를 했죠.2005년 말 Q스쿨에 다시 미끄러지고 2006년 퓨처스투어에서 뛰었는데 또 상금랭킹 9위에 머물렀어요. '이게 내 한계인가 보다'라고 했죠.퓨처스투어에서도 이 정도인데 정규투어에서 될까 했는데 그해 말 Q스쿨에서 1등으로 붙었어요. 삼수한 거죠."

▶왜 한국으로 돌아왔나요.

"미 투어에서 혼자 뛰는 데 1년간 20만달러 정도 들어요. 30만달러는 벌어야 코치도 두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회가 38개에서 22개로 줄어버렸어요. 경비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때 동생들이 국내는 500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러더군요. 귀국해서 상금랭킹 20위권 내에 들면 1억원 정도 버니까. 계약금 5000만~7000만원 정도 받아 경비로 쓰면 국내가 낫겠다 싶었죠."

▶남자친구가 있다던데.

"한국 와서 만났어요. 전반기 시합하고 여름에 5주 쉴 때였죠.인터넷 구인구직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아홉 살 연상이에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이해를 잘해줘요. 저는 줄리 잉스터처럼 결혼 뒤에도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

▶이번 대회를 마친 소감은.

"코스가 너무 좋았고 연습 환경이나 숙소인 홀리데이인콘도 등 모두 훌륭했어요. 다른 대회들도 이 정도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요. 10언더파 코스 레코드는 아마 다시 나오기 힘들 거예요. 기록을 깬다면 제가 깨야죠."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