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남지은 양(16 · 사진)은 자신보다 불과 1주일 먼저 채를 잡은 아빠 남진학 씨(47 · 강릉)에게 골프를 배웠다. 둘 다 처음엔 재미 삼아 시작했다. 하지만 6년 전 속초 영랑호CC에서 동반 라운딩한 날 "아빠 너무 재미있어요"라는 지은이의 말 한마디에 아빠는 '딸의 캐디백을 메겠다'고 결심하고 곧바로 골프 독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골프 레슨용 책과 DVD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어떻게 해서든 딸을 투어 프로로 만들고 싶었다.

제33회 메트라이프 · 한국경제 KLPGA챔피언십 마지막날인 25일 구름처럼 몰린 갤러리 사이에서도 남씨 부녀는 유독 눈에 띄었다. 나흘 내내 유소연이 속한 조를 따라다니며 선수들의 샷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경기가 끝나도 간이 의자를 들고 클럽 하우스 옆에 마련된 선수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지은이는 "프로한테 레슨을 꼭 받고 싶은데 아빠에게 부담을 드릴 수가 없다"며 "프로들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은이는 청소년연맹 중등부 랭킹 1위다. 청소년연맹은 공인대회인 중 · 고연맹 다음으로 평가받는 대회다. 열 살에 아빠와 함께 '머리를 올린' 날 지은이의 스코어는 125개였다.

커다란 눈망울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지은이는 "골프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남과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의 집은 강릉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정선군 임계면.인근에 연습장이 없어 학교를 마치면 아빠와 함께 강릉까지 가야 했다. 1년여를 그렇게 보내다 강릉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아빠는 한계를 느꼈고,딸은 배움에 목말라했다. 서울로 '골프 유학'을 가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남씨는 "레슨비만 한 달에 최소 100만원에서 많게는 700만원까지 드는 데다 생활비까지 감안하면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어서 포기했다"며 "지금은 사업이 어려워져 연습라운딩조차 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연습장에서 살다시피하는 지은이에게 라운딩 기회는 대회에 참가할 때뿐이다.

4라운드가 끝날 무렵 지은이에게 난코인 트룬CC에서 치면 어느 정도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을지 물었다. 당돌한 대답이 돌아왔다. "3오버파 정도는 칠 수 있어요. "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