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야 워낙 높은 분들이니 저희 같은 사람들한테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

전기요금 인상안이 발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8월 어느 날.소관 부처였던 지식경제부 공무원 몇몇이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당시 지경부는 7.6% 인상안을 주장했으나 기획재정부는 급등하는 물가에 대한 부담으로 이보다 2.8%포인트 낮은 4.8%를 제안했다.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 재정부가 제시한 인상률이 관철됐다. 한국전력의 적자폭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폭이 너무 작지 않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지경부 공무원들은 이 같은 자조섞인 푸념을 늘어놓은 것이다.

지경부와 재정부 사이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지경부는 '재정부가 엘리트 의식에 젖어 탁상공론만 한다'고 비판한다. 재정부는 '지경부는 국가경제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 없이 기업 편향적인 시각만 갖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통 재정부 관료 출신인 최중경 장관은 지경부 공무원들의 환대를 받았다. '힘있는' 장관을 앞세워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 최 장관은 이명박 정부 최초로 1급 조직을 지경부에 신설했고,기름값 인하대책을 주도하는 등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금융 전문가인 장관 덕분에 환율 이슈에서도 지경부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부 지경부 공무원들은 "환율,물가 관련 기사를 쓸 때 최 장관님이 박재완 재정부 장관님보다 지면에 더 많이 등장하다보니 재정부에서 자꾸 지경부로 항의 전화를 한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경부의 자신감은 15일 대규모 정전사태의 책임을 지고 최 장관이 사의표명을 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늦더위가 일찌감치 예고된 상황에서 전력난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최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해서 지경부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지경부 위상 강화와 같은 외연 확대와 겉치레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재정부 공무원들을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지경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지경부의 위상은 다른 부처와의 경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국민과 기업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과 같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때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신영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