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저축금융회사'로 바꾸자
한국경제신문은 올 들어 저축은행과 관련한 일련의 보도에서 표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우선 저축은행을 '금융기관'이라고 표기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금융위원회가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면서 '부실 금융기관'이라고 적시한 것을 인용 보도하면서 '금융기관'이란 용어를 쓴 게 전부다.

또 저축은행을 '은행'으로 축약하지 않았다. 앞 문장에서 A저축은행을 언급한 뒤 다음 문장에서 'A은행'이라는 줄임말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독자들께 전달할 내용은 많고 지면 공간은 좁지만 'A저축은행'을 그대로 쓰거나 아니면 '이 회사'라는 표현을 썼다. 마찬가지로 저축은행장을 '은행장'이라고 줄이지 않았다.

본지가 이처럼 저축은행 표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저축은행은 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소(小) 은행'으로 착각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저축은행이 일부 영역에서 은행과 비슷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금을 받고 대출을 내주는 업무는 은행을 본땄다. 하지만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주체가 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운 사람이나 기업이란 점을 고려하면 저축은행은 기본적으로 '은행 영역 바깥에 있는 금융회사'로 보는 게 정확하다. 외환,파생상품,수익증권 판매 등의 업무도 저축은행엔 없다.

저축은행이 은행이 아닌 것은 회계처리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회계당국은 올해부터 상장회사와 대다수 금융회사에 대해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해 재무제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하지만 저축은행들은 금융위원회의 혜택을 입어 앞으로 5년간은 IFRS를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IFRS 기준으로 회계장부를 작성하면 손실률이 제대로 반영돼 쇼킹한 숫자가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마찬가지다. BIS비율은 자기자본이 위험자산과 비교해 어느 정도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분모가 위험자산(정확히는 위험가중자산)이고 분자는 자기자본이다. 상당수 저축은행은 자산을 분류할 때 은행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느슨하게 하고 충당금을 덜 쌓아 분모는 줄이고 분자는 키운다. 평상시엔 당연히 높은 수준의 BIS비율이 나온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제대로 평가하면 BIS비율이 폭락하거나 마이너스로 바뀌게 된다.

저축은행은 1972년 탄생 때부터 2001년까지 상호신용금고였다. 외환위기 이후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오자 정부가 국회의 승인을 얻어 2002년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꿔줬다. 하지만 이제 그 이름을 바꿀 때가 왔다.

핵심은 '저축은행' 네 글자에서 '은행'을 떼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호신용금고로 환원하는 것은 곤란하다. 신용금고는 애초 조합이 발전해서 생긴 일본 금융회사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인데,한국의 저축은행은 이미 주식회사이고 불특정 다수가 고객인 만큼 부적절하다.

대안은 '저축금융회사'다. 줄이면 '저축금융'이다. 2금융권 회사 중 수신을 받는다는 점에서 '저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대출할 때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까지 받는다는 점에서 캐피털업체 등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금융'을 붙이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업(業)의 본질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명칭을 고치는 작업은 그간 무시해 왔던 소비자 권익을 되찾는 첫 번째 작업이다.

박준동 경제부 차장 / 금융팀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