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M&A로 '기술 철옹성'…브로드컴, 공룡 퀄컴을 무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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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통신용 반도체 강자 '브로드컴'
무선통신용 반도체 강자 '브로드컴'
"골리앗 퀄컴이 다윗이 휘두른 골무에 녹다운됐다".
2009년 9월 첨단기술 전문잡지인 레드 오빗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다윗'은 반도체 업체인 브로드컴을 말한다. 퀄컴은 당시 브로드컴의 특허기술을 사용한 대가로 8억9100만달러를 지불키로 합의,사실상 특허전쟁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 UCLA의 사제지간인 헨리 사무엘리와 헨리 니콜라스 3세가 1991년 단돈 5000달러로 세운 반도체 회사가 기술공룡인 퀄컴의 굴복을 받아낸 것.
브로드컴은 무선통신용 반도체업계의 숨은 강자다. 지난해 매출은 68억2000만달러로 전년보다 52% 늘어났다. 세계 최대 반도체 메이커인 인텔의 매출 증가율(24%)을 크게 웃돈다. 순이익은 16배가량 늘어난 10억1000만달러에 달했다. 무선랜을 사용하는 전자제품이 크게 늘며 무선랜용 송수신 반도체 세계 1위 업체인 브로드컴의 실적도 좋아진 것이다. 그 결과 올해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브로드컴은 343위에 올랐다. 전년보다 117계단이나 뛰어오른 것이다.
브로드컴이 대약진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인수 · 합병(M&A)과 인재 제일의 경영을 꼽을 수 있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서 '기술 철옹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우리가 생산한 반도체가 닌텐도부터 아이폰까지 모든 전자제품 안에서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헨리 사무엘리 최고기술경영자)는 자부심이 브로드컴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M&A로 기술 블록을 완성
UCLA 전기공학과 교수였던 사무엘리와 그의 제자인 니콜라스 3세는 1991년 캘리포니아주 얼바인에 브로드컴을 설립했다. 38세로 젊은 교수였던 사무엘리와 33세 만학도였던 니콜라스 3세가 의기투합해 처음 만든 것은 케이블TV용 셋톱박스에 들어가는 저급한 반도체였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투자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정보기술(IT) 바람을 타고 1998년 나스닥시장에 상장,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기업공개를 통해 축적한 자금으로 기술과 인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M&A는 이때부터 회사의 일관된 전략이 됐다.
브로드컴은 상장한 뒤 매년 M&A를 실시했다. 2000년엔 11개 회사를 사들였다. 13년 동안 인수한 기업만 50개가 넘는다. 그러나 10억달러가 넘는 '빅 딜'은 두 건밖에 없었다. 대부분 300만~3억달러 규모에 그쳤다. 회사의 재무상황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미래형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회사를 사들이는 '스몰 M&A전략'이었다. 브로드컴은 기술과 인재를 끌어들여 '브로드컴의 기술블록'을 하나하나 맞춰나갔다.
덕분에 브로드컴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는다. 가전에서 모바일 분야로 사업 확장을 추진하며 2007년 미국 인공위성항법장치(GPS) 반도체업체인 글로벌로케이트를 인수했다. 지난해엔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비씸커뮤니케이션스를 사들였다. 온라인 보안 부문 강화를 목적으로 지난 5월엔 이스라엘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 SC스퀘어를 인수했다.
브로드컴은 사업 확장과 동시에 기술 융합도 추구하고 있다. 2008년 와이파이(근거리 통신망)와 블루투스,FM라디오를 지원하는 통합 반도체를 개발했다. 크기를 기존 제품보다 15% 줄이고 소비전력은 40% 낮추며,와이파이 수신범위는 50% 향상시킨 제품이다. 지난 6월엔 업계 최초로 노트북과 넷북용 40나노미터의 와아파이 · 블루투스 통합 반도체를 출시했다.
마이클 시빌로 브로드컴 통신사업부 마케팅 책임자는 "브로드컴은 오랜 기간 주요 무선 기술의 융합을 추구해 왔다"며 "하나의 플랫폼에 다양한 기술을 결집시킨 것은 그동안 M&A를 통해 쌓아온 폭넓은 제품 포트폴리오 덕분"이라고 말했다.
◆직원 75%가 엔지니어
2004년 브로드컴은 업계 최대 경쟁업체인 퀄컴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브로드컴보다 월등히 덩치가 컸던 퀄컴은 맞고소로 대응,5년간 법정에서 다퉜지만 결국 2013년까지 브로드컴에 8억9100만달러를 지불한다는 데 합의해야 했다. 브로드컴이 공격적으로 특허소송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미리 특허전에 대비해 왔기 때문이다. 브로드컴이 미국 내와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은 1만4600여개에 달한다. 권리 획득을 위해 출원 중인 특허만도 7800여개다.
반도체설계 전문기업 중에서 특허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세계 전체 반도체업체 중에서는 4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코트 맥그로그 브로드컴 CEO는 "특허 확보는 시장 예측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맞춰 무엇보다 특허를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브로드컴의 또 다른 자산은 사람이다. 전체 7200여명의 직원 중 75% 이상이 엔지니어다. 맥그로그 CEO는 "우리가 막강한 특허를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은 탄탄한 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술을 사들인 뒤 그것을 다른 기술과 융합하고 발전시켜 브로드컴의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은 뛰어난 인재 확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에릭 브랜트 브로드컴 최고재무관리자는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브로드컴의 채용 동결 전망을 일축했다. 그는 "미국 경제 침체로 고용시장이 얼어붙고 있지만,우리는 새로운 인재 확보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로드컴은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에 2000만달러를 들여 연구개발센터를 짓고 내년 3월 입주할 예정이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